[필동정담] 전세는 누구의 빚인가

박만원 기자(wonny@mk.co.kr) 2023. 4. 2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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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보증보험에 들어 놔야겠어요." "요즘 보험 가입자가 많아져서 서류 접수가 깐깐해졌다고 하네요." 전세 피해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화다. 최근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전세를 계약하고 뒤늦게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려는 세입자들이 급증하는 것이다.

전세보증보험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또는 서울보증보험(SGI)을 통해 가입하는데 보험료는 세입자가 부담한다. 전세가가 2억원이라면 연간 보험료는 50만원 안팎에 달한다. 전세제도가 수십 년 관행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보증보험료를 세입자가 납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전세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계약이다. 그런데 집주인은 이자를 한 푼도 내지 않고, 돈을 빌려준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이자처럼 보험료를 내야 한다니.

담보가치라 할 수 있는 집값보다 더 높은 금액에 전세를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담보를 떼여도 남는 장사다. 심지어 대출 규제까지 피해가는 '특혜'를 누린다.

전세금은 집주인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때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사적인 계약이라는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2억원짜리 집에 대해 8000만원을 대출받고, 8000만원에 전세를 놓는다면 LTV는 80%에 달한다. 아무리 봐도 돈을 빌리는 쪽, 즉 집주인에게 너무 유리한 구조다. 주택 담보는 안전하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전세가 월세에 비해 금융비용이 적게 든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결과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전세 사고에서 드러나듯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질 때는 전세가 안전하지도 않고, 세입자에게 유리하지도 않다.

깡통전세 문제가 특정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세보증금의 일부를 대출 규제에 포함하거나 전세가율을 제한하는 등 안전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박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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