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나는 프리랜서다
며칠 전, 볼 일이 있어 운전면허시험장에 들렀다 나오는데 입구에서 '국민취업지원제도'에 관한 전단지를 나눠 주고 있었다. 노란색 종이를 보며 내가 고용노동부의 취업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전단지를 주신 분이 다가와 상담도 해주니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버스에 타서 찬찬히 내용을 봤더니 놀랍게도 내가 해당되는 항목이 있었다. 소득, 재산 무관에 만 15~69세 여성 가구주, 그러니까 나는 2유형 '특정 계층' 안에 들어간다. 직업훈련교육비도 나오고 큰돈은 아니어도 취업활동비가 지원되며, 소득에 따라 취업성공수당도 있다.
솔직히 정말 취업을 준비할 생각은 '아직' 없다. 나이나 경력으로 봐서 나를 받아주는 데도 없으려니와 20년 동안이나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는 데 익숙해져 있는 몸이라 출퇴근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전단지를 찬찬히 읽어본 건 요즘 같은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는 프리랜서로 산다는 게 부쩍 더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행복하다고 했던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장된 수입도 있어야 행복한 거다. 새삼스레 신세 한탄을 늘어놓자는 건 아니다. 다만, 프리랜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나 처우, 시스템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너무 뒤처져 있다는 말은 해야겠다.
몇 년 전 처음으로 개인신용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갔을 때 일이다. 프리랜서도 대출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대충 서류를 꾸려 찾아갔는데, 담당자는 프리랜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계약서나 위촉증명서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도 작년 종합소득세 신고에 잡혀 있는 업체와의 계약서여야 한단다. 모순덩어리다. 우선, 나처럼 일회성 일이 많은 프리랜서에게는 현재진행형의 계약서가 있을 리 희박하다. 더욱이 종합소득세 신고에 잡히려면 최소 1년 이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야 하는 일인데, 그렇다면 그건 최소한 계약직에게나 해당 사항이 있겠지, 프리랜서에게 가능한 서류인가? 이것은 프리랜서라는 개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요구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 제1금융권에서 프리랜서는 대출이 되지 않거나 되더라도 직장인들의 소득과 비교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의 금액밖에는 되지 않는다. 더욱 억울한 것은 그 당시 나는 코로나 생활지원금도 받지 못할 정도로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대한민국 상위 12% 안에 들 정도로 수입이 많다면 열 평대 빌라 전세를 얻는 데 대출 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건강보험료는 상위 12%로 내면서 대출은 하위 12%로 받으니 뭔가 한참 잘못됐다.
4대 보험 가입 유무나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프리랜서의 재정 상태를 판단하는 데는 허점이 많다. 한국에서도 20·30대 프리랜서들과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윤성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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