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명인집 놀러다니다 저도 명인됐지요
어릴때 故김광주 명인 옆집살아
고교졸업후 제자되어 기능 전수
현악기 제작·복원서 독보적 명성
제작법 잊혔던 정악가야금
日 보관 신라금 참고해 복원
국악기 제조 분야에서 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였던 김광주 악기장은 종종 집으로 놀러오는 옆집 남자아이를 눈여겨봤다. 귀한 악기 재료를 가져가 썰매를 만드는 등 말썽을 피워도 크게 혼내지 않고 조카처럼 예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김 악기장의 제자가 된 아이는 1985년 김 악기장이 타계할 때까지 기능을 전수받았다. 이후 대가로 성장해 1997년 김 악기장의 뒤를 이어 46세 나이에 국악기 제조 분야 인간문화재가 됐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등 현악기 제작과 복원·개발 영역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고흥곤 악기장(72·사진)의 이야기다.
국악인들에게 고 악기장은 곧 가야금의 '대명사'다. 고 악기장이 직접 만드는 가야금은 1년에 20여 개 남짓이지만 전문 연주자와 입시 준비생들은 대부분 고 악기장의 가야금을 사용한다. 고 악기장이 만드는 악기의 성능이 그만큼 압도적이어서다.
고 악기장은 제작법이 잊혔던 정악가야금을 10여 년의 연구 끝에 복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궁중·상류층 음악(정악)에 사용되던 정악가야금은 제작 명맥이 끊겨 국악인들은 정악을 연주할 때도 크기가 작은 산조가야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악학궤범 등 고문헌에 정악가야금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있지만 제작법은 적혀 있지 않다. 고 악기장은 일본에 건너가 쇼소인(일본 황실 창고)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시라기고토(신라금)를 보고 오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정악가야금을 부활시켰다. 고 악기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림 등을 통해) 모양을 아는 것과 실제로 소리를 내 연주할 수 있게 제작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정악을 전통에 맞게 정악가야금으로 연주해야 한다는 장사훈 서울대 교수 등 국악인들의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고 악기장은 정악가야금을 복원한 공로로 1985년 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정악가야금은 소리가 맑고 웅장해 오늘날 실제 가야금 연주자들의 공연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고 악기장은 국악과 양악의 협연이 자주 이뤄지는 변화에 맞춰 18·25현 가야금, 개량 거문고 '다류금' 등 새로운 악기를 개발했다. 과거 악기의 복원과 기존 악기의 제작을 넘어 국악의 흐름에 맞게 국악기 발전을 이끈 것이다.
고 악기장은 자신의 악기가 사용되는 연주회를 찾아 소리를 모니터링하기도 한다.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손보고 다음 악기를 만들 때도 참고하기 위해서다. 고 악기장은 "내가 만든 악기가 무대에서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를 알아야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다"며 "연주장마다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도 세밀하게 파악해 연주자의 악기를 보완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문화재로서 고 악기장은 10여 명의 제자에게 기능을 전수하고 있다. 재료공학과 국악이론을 전공한 하나뿐인 아들도 그중 한 명이다. 제자 중 일부는 이미 전수조교(인간문화재 전 단계)가 됐고 대통령상을 받은 제자도 여럿이다. 고 악기장은 "스승(김 악기장)에게 받아 발전시킨 국악기 제작 기술을 제자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전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 사진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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