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보도 노출 최소화하고 청소년 아픔에 귀 기울여야
또래 친구나 유명인들 자살하면
청소년 더 큰 영향받고 모방도 늘어
미디어 문해력 교육 시급하고
자살예방프로그램 집중 실시해야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강남에서만 10대 학생 3명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중 한명은 소셜미디어(SNS)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과정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19일에는 아이돌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청소년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일련의 사건으로 우울감과 고통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에게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거나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라’ 등의 반응은 금물이다. 대신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잇딴 자살 보도와 소식을 접하는 청소년들의 모방자살과 자살 시도를 예방하기 위한 청소년 마음전문가인 김현수 정신과 전문의의 기고를 싣는다. - 편집자주-
코로나 이후 마스크를 벗고 시작한 첫 봄, 청소년과 학교, 가족에게 큰 위기의 순간이 닥쳤다. 최근 보도된 청소년의 충격적 자살은 인터넷 언론과 에스엔에스에 의해 파급력이 커졌고, 며칠 후 유명 연예인의 자살마저 알려지면서, 그 영향이 청소년 세계에 깊숙이 퍼지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 모방 자살의 파도가 다시 넘실대는 위기의 시간들이 찾아왔다.
최근 미국과 영국의 청소년 모방 자살을 연구한 영국의 정신과 의사 피트먼에 따르면, 동료나 유명인이 자살하면, 첫째 성인에 비해 청소년과 청년들이 영향을 더 크게 받으며, 모방 자살 및 자살 시도가 늘어나게 되고, 둘째 자살을 현재 고통에 대처하는 한 방법으로 더 많이 학습하게 되며, 셋째 삶의 절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다고 보고했다. 특히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10∼20대의 여성들에게 이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의 여성들이 우울증을 비롯한 섭식장애, 불안장애 등의 정신병리 현상이 더 많고, 동성 친구나 연예인에 대한 공감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 청소년의 취약성에 대한 이해 부족과 미디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없으면 모방 자살 효과는 더 커진다고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른들이 해야할 일은 명백하다. 가장 시급한 첫 번째 과업은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나쁜 보도를 빨리 제거하고, 아동 청소년에게 정보에 대한 문해력 교육을 빨리 제공하는 것이다. 비윤리적 보도와 오염된 인터넷 소식들은 치명적 자살 감염을 일으키는 일로, 이는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 청년 대중이 모여 있는 곳에 염산을 뿌리는 공격과 같다. 자살 보도를 통해 알게 된 과장된 사회적 현실과 해결 수단으로서의 자살에 대한 사회 학습은 자살 시도를 증가시킨다. 자살 모방 행동의 증가는 미디어 노출의 증가와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디어 노출을 최소화 혹은 차단하는 것이 더 이상 ‘죽음의 주스’를 마시지 않게 하는 어른의 일이다.
둘째로 모방 자살의 또 다른 강력한 영향은 ‘동조 경향’이다. 이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자살할 때 동류의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받는 큰 영향을 말한다. 그래서 동조 효과가 더 크게 작동하고 있는 위험집단을 찾아서 만나고, 고위험 집단들에게 따뜻하고 섬세한 작업이 전달되어야 한다. 자살자의 주변 집단, 소속 학교, 연결된 네트워크 성원들에게 낙인 효과를 주지 않는 예방적 관심과 돌봄 또한 각별한 방식으로 필요하다. 특히 이번 사안의 경우, 관련 지역 여학생들과 주변의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고품질, 대용량의 돌봄과 네트워크, 도움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위험군을 대상으로 따뜻한 돌봄과 사랑의 영양제가 응급조치처럼, 정맥으로 제공하는 수액처럼 제공되어야 한다. 평상시 내복약을 먹듯이 하는 일상의 서비스는 현재 효과가 발휘될 수 없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접근이 필수다.
셋째로, 가정과 학교에 자살 예방 프로그램이 집중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자살 경고 징후를 비롯하여, 울분에 찬, 표현하지 않고 지내는, 그러나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는 자살 계획을 알아내도록 서로에 대한 보살핌 지식을 높이고 관심을 구체적으로 가져야 한다. 적어도 이번 한 학기 동안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 캠페인으로 생명 사랑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친절하고 공감적인 관계 활동이 학교 안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져야 한다.
넷째, 현재 적체된 외래 진료 및 상담 상황이 개선되어야 한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진료 요청과 상담 대기로 가정, 학교가 모두 어려운 상태이다. 정부나 교육청이 정신과 의사 협회와 더불어 심리사, 상담사 등 여러 다른 지원 협회들과 하루바삐 협력과 협약을 통해 패스트 트랙(빠른 진료 체계)이 마련되어져 힘든 청소년들에 대한 도움이 제공되어야 한다.
다섯째, 죽고 싶다는 마음을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진심 어린 경청을 해줄 부모, 교사, 중요 어른이 있어야 한다. 이해는 생명이고 거절, 거부는 아이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이끈다. 죽고 싶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말이다.
현재 코로나 이후 청소년들의 분위기, 교실의 상태는 우울 및 불안 증가, 학교폭력 증가 등으로 내전 같은 상태인데, 어른들과 정책 당국은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가 필요하다. 몇 개월의 진료 대기를 뚫고 가까스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의 삶 속에 돌봄의 어른들은 현재 부족하거나 혹은 부재중인 상태다. 대기실에 앉은 많은 청소년들, 특히 여학생들은 처절히 외롭거나 친구 관계가 어렵다는 상태 투성이다.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유튜브 방송의 증가, 에스엔에스 채널의 증가, 영향력 높은 셀럽의 증가는 자살 모방 행동의 위험성을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이 요소들은 현재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즉 위험 수위는 최고다. 돌봄 공동체를 회복하는 노력이 지금 절실하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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