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로 삶을 디자인하고 먹거리로 사회를 돌본다
급식 만들며 ‘요리하는 몸’ 만들고
요리인문학으로 생각 키우고
3년 과정 마친 뒤 다양한 진로
인생에서 한번쯤 요리 배우고 싶다면
학교밖 청소년들 지원 가능
지난 17일 아침 문을 열고 들어간 서울 영등포구 ‘영셰프스쿨’. 한쪽에서는 다시마와 갖은 야채를 넣은 육수가 뭉근하게 끓으면서 달큰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커다란 사각 조리대에는 오징어, 양배추, 양파, 당근, 연근, 대파, 숙주 등 30인분을 책임질 다양한 식재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현미밥에 시금치 된장국, 오징어야채볶음, 연근조림, 숙주나물입니다.”
요리 선생님이 각 메뉴의 특징과 조리 시 주의점을 상세하게 설명한 뒤 각자 맡을 일을 배분했다. 주어진 시간은 2시간남짓. 요리 선생님 2명과 학생 2명이 곧바로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썰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탁탁탁탁탁…. 리드미컬한 칼질이 공간을 매워나갔다. 학생들은 데치고 볶고 끓이는 등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조리대와 싱크대에 물 한방울도 남기지 않게 깨끗히 정리할 뿐만 아니라 관련 도구를 소독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 수업은 요리를 배우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인근의 대안학교인 오디세이학교의 급식을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점심 급식시간 전에 메뉴를 다 완성해야 했기에, 이들은 계속 시간을 체크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요리 선생님은 학생들 곁에서 음식들이 보기에도 예쁘면서 가장 맛있는 상태로 차려내기 위한 요리 팁을 계속 가르쳐줬다. “숙주나물은 미리 무쳐놓으면 물이 생기기 때문에, 급식으로 나가기 직전에 무쳐야 해요. 된장국에 시금치를 너무 일찍부터 넣어서 끓이면 숨이 죽어서 파릇파릇한 생기가 없어 보이니 마지막 단계에 넣어야 해요.”
무사히 급식을 배송시킨 뒤 선생님과 학생들은 둘러앉아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메뉴에서 꼭 숙지해야 될 점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질의응답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들이 만든 메뉴로 점심식사를 즐겼다.
“학교가 현장이고 현장이 학교”
지난 2010년 문을 연 영셰프스쿨은 요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는 대안학교다.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만든 ‘피프틴’을 모델로 출발한 이 학교는 현재 사회적기업인 ‘영셰프’가 운영한다. ‘피프틴’은 요리를 통해 청소년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자선재단이다.
영셰프스쿨의 학생 정원은 10명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작은 학교’를 지향하며, 강사와 학생들은 나이와 직함에 상관없이 이름 대신 별명으로 서로 부르는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다.
3년 과정으로 운영되는 영셰프스쿨의 1년차는 ‘요리하는 몸’을 만드는 과정이다. 오전 수업은 위와 같이 오디세이학교 급식을 책임지면서 요리를 배우는 시간이다. 한식을 기반으로 양식, 분식 등 다양한 메뉴를 배워나간다. 이날 수업에서도 교육 셰프인 줄리가 “손님은 요리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에 맞춰서 음식을 해낼 수 있는 속도와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요리에 대한 기초 체력을 탄탄히 갖출 수 있는 시간이다.
1년차 오후 수업은 스페인·중국·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문화와 슬로푸드, 로푸드 등 최신 식문화를 접하면서 요리인문학(환경, 마을인문학)과 요리감성학(몸수업, 마음수업, 음악수업, 아트워크) 등을 배우는 다양한 수업들로 채워지고 도시농사도 짓는다.
2∼3년차는 요리하는 생각을 키우고 요리하는 삶을 실험하는 과정이다. 요리와 음식을 주제로 하는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한식당, 프랑스식당, 이탈리아식당 등 다양한 식당으로 인턴십을 나간다.
영셰프스쿨이 일반적인 요리전문학원이나 대학의 조리학과와 갖는 가장 큰 차별성은, 1년차에서부터 현장 실습을 한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에서 유명 셰프나 연예인들이 나와서 요리하는 모습은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수십인분의 요리를 단시간에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은 중노동에 가깝다. 요식업은 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의 ‘갭’이 굉장히 큰 직종이기에 요리학원이나 조리학과를 나와서 취직했다가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영셰프스쿨에서 1년간 오디세이학교의 급식을 책임지면서 요리하는 몸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생 이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입학 초기인 3∼4월에는 학생들이 몸이 힘들어서 아프기도 하고 지각도 하는데, 일단 이 시기를 넘기고 나면 익숙해지고 편해진다고 한다. 담임교사 보리는 “요리를 배우는 학교가 곧 현장이고, 현장이 곧 학교라는 점이 영셰프스쿨의 강점”이라며 “이런 과정은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3년차 과정에서는 요리를 매개로 하는 다양한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실험해보면서 자기의 삶과 요리를 연결시킬 수 있다. 특히 환경과 기후위기, 채식 등을 고민하는 수업을 듣고 관련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먹거리를 통해 사람과 사회를 돌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먹거리 통한 돌보는 삶 지향
올해 입학한 다홍(21)은 “요리와 채식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본격적으로 배워보고자 입학했다”며 “요리뿐만 아니라 음악, 환경수업도 받고 텃밭도 가꾸는 등 다양하게 열려 있는 대안교육을 한다는 점도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배워서 만드는 음식이 바로 학생들의 급식이 되니까 현장에서 배우는 느낌이 좋고, 매일 급식을 준비하다 보니 요리가 빠른 속도로 편해지고 익숙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신입생 지현(20)은 “단순히 요리를 배우기보다 스스로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요리를 매개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학교의 교육 취지가 마음에 들고 이곳에서 성장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원했다”며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요리를 가르친다든지 내가 뭔가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와 실험이 많이 주어지니까 내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말했다.
영셰프스쿨 졸업생의 진로는 다양하다. 일부는 더 심도 있는 요리 전문성을 쌓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일부는 요리사로 취업해서 현장으로 나가고, 일부는 완전히 새로운 진로를 찾아서 떠난다고 한다. 현장에 취업한 친구들은 후배들을 위해 영셰프스쿨 강사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신입생은 17∼24살 학교 밖 청소년들로 받는다. 대안교육을 받고 있거나 홈스쿨러, 제도권 교육에서 자퇴한 청소년이라면 지원이 가능하다. 소정의 입학금을 제외한 학비는 무료다.
영셰프스쿨을 졸업한 뒤 프랑스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7년차 요리사 가을(30)은 “요리는 결과물도 바로 나오고 피드백도 바로 받을 수 있으니까 성취감도 느끼고 뿌듯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그걸 통해 한단계 한단계 나아갈 수 있다”면서 “자신에게 시동을 걸어줄 뭔가가 필요하다거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나를 찾아보고 싶다는 청소년들에게 영셰프스쿨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담임교사 보리는 “영셰프스쿨은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고 다양하게 자기주도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고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이 오면 굉장히 잘 맞다”며 “요리사가 꼭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입학해도 되지만, 살면서 요리도 한번 배워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학생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꼭 요리사가 되지 않더라도 지구환경과 먹거리를 고민하며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며, 이곳에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입학 문의는 02-2679-5525.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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