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출산이 삶의 의미를 파괴하는 나라
삶에 의미 되기에 아이 낳아
한국은 과도한 양육비 부담에
삶에 의미 대신 불안 가중
매 순간 느끼는 기쁨을 켜켜이 쌓는 게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을 것이다. 양육은 매 순간이 고난이기 때문이다. 옛말에도 "밭맬래, 애 볼래"라고 하면 밭일을 선택한다고 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의 행복도는 낮아졌다. 자녀가 성장해 집을 떠난 뒤에야 만족도가 회복됐다. 대니얼 길버트 하버드대 교수가 "자녀가 떠난 뒤 노부부가 겪는다는 '빈둥지 증후군'의 증상은 나날이 늘어나는 웃음뿐"이라고 했을 정도다. 폴 블룸 예일대 교수는 "쾌락적 관점에서 보면 출산은 실수라는 게 다수의 조사가 뜻하는 바"라고 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인류는 수만 년 동안 아이를 낳고 키운 것일까. 단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 '예측하는 자아'로 나뉜다고 한다. 당장 육아를 경험하는 자아는 고통을 느끼겠지만 '기억하는 자아'는 다르다. 아이가 커온 사진을 볼 때면 충만감을 느낀다. 배우자와 둘이서만 찍은 사진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행복 연구는 이를 입증한다. 자녀를 돌보는 데 더 오랜 시간을 들인 사람일수록 삶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는 자신들 삶이 아이가 없는 사람보다 더 의미 있다고 답했다. 우리의 '예측하는 자아'는 아이를 낳기 전에 이를 미리 내다본다. 양육이 비록 힘들겠지만 우리 삶에 의미와 목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이 들어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더 깊은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어찌 된 것인가. 출산율이 세계 꼴찌다. 지금 젊은 한국인들은 출산과 양육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인가. 나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 길을 걷고 싶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꿈꾸는 자기 미래가 있었다. 그런 도전을 감행했다가 실패하더라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돈을 모아둬야 했다. 몇 년 뒤 나는 사표를 내고 전업 소설가가 됐다. 아이가 있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원천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삶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발견한다. 어떤 이는 소설 쓰기와 같은 직업적 성취에서, 또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에서, 또 다른 이는 숨이 턱턱 막히며 산을 오르는 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기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출산과 양육을 선택한 대가로 자기만의 삶의 의미를 포기해야 한다면 우리는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그 베스트셀러 작가를 비롯한 요즘 젊은 세대는 그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듯싶다.
내게 저출산은 MZ세대의 절규로 들린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 내가 추구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절규 말이다. 그들의 '예측하는 자아'는 불안에 떨며 이렇게 속삭인다. "미친 사교육에 돈을 쓰고 나면 매달 적자일 거야. 직장은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몰라. 노후 준비도 안 될 거 같은데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MZ세대는 양육에서 삶의 의미 대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발견한다. 그러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진정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단순히 '돈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는 식의 대처는 오히려 삶의 의미를 파괴한다. 여성을 출산 기계로 대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돈을 준다면, 그 돈이 삶의 의미를 증진하는 데 보탬이 돼야 한다. 그래야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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