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쌍룡훈련에 해병 보낸 영국, 한국과 특수관계 만든 사건은

김수형 기자 2023. 4. 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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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사이트]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인터뷰


안녕하세요. SBS 통일외교팀장 김수형 기자입니다. 저는 오늘 영국 대사관저에 나와 있습니다. 서울 정동에 위치한 이 건물은 1892년에 지어졌는데, 당시 서울에 지어진 네 번째 서양식 건축물이었습니다.

이런 붉은색 2층 벽돌 건물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양식에,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건축 스타일이 더해진 건데 중국, 인도의 다른 영국 공관들도 비슷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이 건물에 매료됐던 고종은 1910년 덕수궁 석조전을 지으면서 영국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겼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수교 140주년을 맞는 영국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합니다. 특히 지금 주한영국대사는 이전까지 주북한 대사를 지내기도 했죠. 한국말 잘하기로 유명한 콜린 크룩스 대사를 만나보겠습니다.


Q. 대사님 이렇게 아름다운 대사관저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Q. 근데 질문드리기 전에 어떻게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세요?

A.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30년 전에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원래 외교관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여기 오기 전에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어요. 사실 저희 외무성은 저희 외교관들의 언어 실력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습니다.

Q. 북한에서도 대사 생활을 하셨는데 북한에서도 북한말을 많이 배우셨나요?

A. 거기서 한국말 아니고 조선말을 했습니다. 사실 한국말하고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약간 있습니다. 억양도 다르고 단어 약간 차이점도 있고. 하지만 제일 큰 차이점이 뭐냐 하면 말하는 주제가 달라서 말하는 말투를 조금 바꿔야 했어요.

예를 들어서 "괜찮아요" 아니고 "일 없습니다" 그런 말을 해야 되고, 또 언제나 "했어요", "하셨어요" 그런 말을 하지 않고 "했습니다" 언제나 "습니다", "합니다" 그런 말로 하는 것 같습니다.

 

쌍룡훈련에 참여한 영국 해병…그 이유는?


Q. 이번에 쌍룡훈련에 영국 해병대가 참가를 했습니다. 영국군이 쌍룡훈련에 참가한 이유가 뭐고, 영국이 이 훈련에서 어떤 걸 기대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쌍룡훈련은 저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생겨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영국은 예전부터, 한국전쟁 6·25부터 유엔사령관의 한 회원국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영국은 미국의 동반 국가이고, 한국하고 우호 관계에 있어서 계속해서 영국은 한국 곁에 서 있고 함께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겁니다.


그런데 영국 정부가 한국에 대해서 언급할 때 꼭 강조하는 게 있었습니다. 임진강 전투로도 불리는 글로스터 고지전입니다.
 
제임스 클레벌리 │ 영국 외무장관
개인적으로 예비군으로서 1951년 임진강에서 고된 역경에 맞서 영웅적으로 서울에 대한 공격을 무찌른 영광스러운 글로스터 전투를 존경합니다.

6·25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에서 영국군 제29여단은 서울을 목표로 한 중공군의 총공격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특히 글로스터 대대는 고립된 상태에서 사투를 벌이다 600명이 넘는 대대원 대다수가 중공군에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하는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의 치열한 저항 덕분에 거침없이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의 공세를 꺾을 수 있었고, 시간을 번 유엔군은 무사히 철수해 중공군 방어 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군의 희생 덕분에 전쟁의 전개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던 겁니다. 23일은 글로스터 고지전이 벌어진 지 7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Q. 영국이 글로스터 고지 전투를 왜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A. 중공군이 마지막에 아주 큰 공격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때 영국 군인들이 글로스터 고지 전투를 통해서 중국 공격을 막게 되었고, 상당히 중요한 전투였고, 상당히 상징적인 전투였습니다. 저희 군인들이 많이 죽었고, 목숨을 걸었고, 물론 영국 군인들이 한국전쟁에서 다른 전투에 많이 참가했는데 이 전투가 특별히 중요했고, 특별히 많은 희생을 했고, 그래서 이 전투는 저희 영국 군인들의 참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영국 군인들이 그 당시에 6·25 때 한 8만 명이 참전했고, 그중에 1,000명의 젊은 군인들이 죽었습니다. 언제나 글로스터 고지 전투를 기억할 때, 이 희생을 기억합니다.
 

북한의 도발을 지켜보는 영국은 어떤 생각?


Q. 북한이 화성-18형 ICBM 발사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사실 한반도뿐만이 아니라 미국 또 주변에 있는 여러 나라들도 안보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런 북한의 군사력 발전을 영국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A. 사실 영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이런 국제법을 어기는 행동을 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희가 보기에는 북한이 핵무장을 할수록, 미사일 프로그램을 진전시킬수록 다른 나라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방어할 것 같습니다. 더 견제할 것 같습니다. 더 제재를 가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 진짜 자기 나라 강화시키고 싶어 하면, 비핵화로 가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질서, 국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겠고, 또 대화를 위해서 저희 북한에 있는 대사관 문을 다시 열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Q. 현재는 (주북 영국) 대사관 문이 닫혀 있는 상태인가요?

A. 네, 제가 3년 동안 북한의 대사로 일했어야 되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국경 봉쇄 때문에 저희 대사관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어서 코로나가 생긴 지 몇 달 만에 저희 대사관 문을 임시적으로 폐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북한에서 대사관을 다시 열겠다, 이런 신호 같은 걸 보내주는 게 있습니까?

A. 아직은 못 받았지만 한 2주 전에 새로 신임한 중국대사가 북한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한 사람이 북한 국경을 넘어가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Q. 그러면 이제 영국도 어떻게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대사관을 열 가능성이 있겠네요.

A.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Q. 북한의 도발 수위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는 한국도 핵을 가져야 되는 거 아니냐 혹은 예전에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했었던 전술핵을 다시 배치해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국은 한반도의 핵무장론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신지요?

A. 사실 한반도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비핵화가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제일 좋은 방법은 핵 무장이 아니라 연대, 다른 동맹국하고 연대를 통해서 자기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사실 국제법을 잘 지키는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도 핵 무장을 하면 국제법을 어기는 행동으로서 저희 같은 나라들이 지지할 수 없습니다.

Q. 북한 인권 상황의 실태가 좀 어땠는지 그리고 뭐가 제일 큰 문제였다고 보시는지요?

A. 사실 모든 사람처럼, 저는 북한 인권에 대한 끔찍한 보도를 많이 읽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었을 때, 외무성하고 만났을 때, 무조건 인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언제나 저한테 보도는 거짓말이라고 북한 외무성이 말씀했는데, 제가 대답한 것은 실황을 알기 위해서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이 좀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인사들하고 만날 때, 가급적 좋은 관계를 가지도록 노력을 하겠지만, 언제나 그 북한 핵 문제, 미사일 문제, 인권 문제에 있어서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조금 더 어려웠어요.
 

북한에서 올렸던 SNS


Q. 북한에서 여러 군데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그렇게 사진을 촬영해서 SNS에 올리실 수 있었던 겁니까?

A. 네, 사실 외국 외교관으로서 저는 거의 자유롭게 평양시 안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었고, 또 남포 원산 같은 도시도 자유롭게 갈 수 있었고, 다른 데로 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됐지만, 그 허가를 거의 언제나 받았고, 모든 북한의 도를 방문해서 행정구역 다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아이폰 가지고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Q. SNS에 올리는 행위 자체를 북한에서 문제 삼진 않았나요?

A. 사실 저희 대사관 안에 인터넷 시설이 있어서 자유롭게 올릴 수 있었어요. 물론 북한 정권이 좀 예민한 부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 시민을 존중하면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Q.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보신 적도 있으세요?

A.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무대에서 김정은의 모습을 봤습니다. 한 30m 거리에서 봤습니다. 하지만 제일 높은 인사가 누구냐 하면, 김영남 그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제가 신임장을 제정했을 때 그분한테 제정했습니다.

Q. 저는 그 사진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마라톤을 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있던데, 다른 외국인 분들이 많이 보이시더라고요. 그분들은 대사관 분들이신가요? 아니면 거기 직접 참가한 다른 분들인 건가요?

A. 그때 마라톤 행사는 2019년도였는데, 그때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북한이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고, 특히 마라톤은 아주 큰 행사이기 때문에 아마 그때 제일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천 명 외국 마라톤 선수가 들어왔는데 그중에 한 100명 정도가 영국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 1,000명이 외국인. 그중에 한 100명이 영국인이었습니다. 저희 대사관 직원은 그 정도가 아니고, 저희 대사관 직원들은 한 5명밖에 없었어요.


Q. 북한에서 대사로 계실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였습니까?

A. 좋은 추억이 많겠지만, 제일 귀한 추억은 특히 명절 같은 날에 특히 모란봉 공원에 나가서, 보통 북한 사람들이 외국인 보면 조금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런 명절 때 일반 시민들이 술 좀 마시고 좀 더 좋은 분위기가 생겨서 외국인들하고 좀 더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 기회가 생겨서 그런 날이 잘 기억납니다. 고기도 구워 먹고 또 노래방 같은 곳에서 노래도 같이 부르고 전 아리랑 북한 시민들하고 같이 부르는 기회도 생겼고요.
 

영국은 식민지였던 미국과 어떻게 단짝 됐나

Q. 영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겁니까?

A.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 규탄하고 반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사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그 기본 가치를 공격하는 겁니다. 민주주의, 인권 또 국가의 주권도 공격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보고 민주주의 같은 나라들이 러시아를 규탄할 수밖에 없고, 1950년 북한이 한국을 침공했을 때, 영국도 마찬가지로 규탄하고 반대했습니다.

Q. 대사님이 보시기에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더 많은 무기를 지원하는 그런 게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A. 사실 분명한 것은 한국과 영국, 미국 같은 나라들이 다 러시아의 행동을 반대하는 편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서 노력을 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는데, 한국은 영국,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 대화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형 기자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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