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장에선 무슨 일이···이재명 ‘기억력’ 따진 법정
지난 대선 때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성남시장 재직 땐 하위직원이어서 몰랐다”고 발언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두 사람이 9박11일간 동행한 2015년 10월 호주·뉴질랜드 출장은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입니다.
검찰은 공식 출장 일정을 빠져나와 골프를 치고 카트까지 같이 탄 김 전 처장을 이 대표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이 대표 측은 성남시장 재임 중 16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온 이 대표가 하급 실무자를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맞섭니다. 6년 전 호주·뉴질랜드 출장에선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골프·관광 ‘외유성 출장’ 검찰 주장에…이 대표 측 “놀러왔냐 질타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강규태) 심리로 지난 14일 열린 이 대표 재판에는 출장에 동행한 성남시청 공무원들이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검찰은 당시 출장이 ‘외유성’이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 등 사적으로 친하게 지낸 사람들을 데려간 출장이었다는 겁니다.
출장 인솔자였던 성남시청 교통기획과장 A씨는 “출장 목적과 관련된 공식 일정이 없어서 공무상 출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유동규, 김문기 등 성남도개공 사람들은 관련도 없는데 왜 왔을까 싶었다”고 했습니다. 출장 명목은 트램 벤치마킹이었지만 현지 일정은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장, 쇼핑타운 방문 등 공무와 무관해 보였다는 겁니다. 출장에서 처음 본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과 김 처장은 트램 업무 담당이 아니었다고도 했습니다.
A씨의 진술은 앞서 증인으로 나온 유 전 본부장의 입장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이 ‘시장이 편히 여길 사람을 데려가라’고 해 출장자를 김 처장으로 교체했다”고 했습니다. 트램 관련 사업은 2처장 담당이지만 이 대표와의 친분을 고려해 김 전 처장을 데려갔다는 겁니다.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표, 김 전 처장과 셋이 공식 일정을 빠져나와 골프장에 갔으며, 김 전 처장이 이 대표가 탄 2인용 카트를 운전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대표 변호인은 곧장 반격에 나섰습니다. 출장 중이던 2015년 1월10일 아침 이 대표가 A씨를 찾아 ‘과장님, 놀러왔습니까? 오후 일정 취소하고 귀국하든지 본국 연락해 일정 잡으라’고 말하지 않았냐는 겁니다. 당초 트램 차량기지 내부 견학을 계획했는데, 멜버른과 사전 협의가 되지 않아 방문을 못 하게 되자 이 대표가 인솔 책임자인 A씨를 불러 타박한 걸 보면 ‘외유성’ 출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이에 A씨는 ‘당신(이재명)이 놀았자, 내가 놀았나’라고 생각해 매우 화가 났었다고 진술합니다.
이 대표 측은 A씨가 검찰에서 “당시 유 전 본부장은 이 대표의 비서같은 느낌이었고, 김 전 처장은 유 전 본부장의 비서 같은 느낌이었다”고 진술한 것도 강조했습니다.
이날 성남시청 직원들은 이 대표가 공식 일정을 얼마나 이탈했는지, 이 대표와 김 전 처장 등이 몇 번이나 골프를 쳤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당시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보면 이 대표, 유 전 본부장, 김 전 처장이 몇 차례 공식 일정을 이탈한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히 골프 라운딩을 한 것은 한 차례라고 특정한 상태입니다.
머리 좋은 이 대표?…‘기억한다’와 ‘안다’ 사이
이 대표의 ‘기억력’을 두고도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같이 간 다른 성남시청 직원 B씨가 ‘교류가 별로 없던 이 대표가 몇 년 후 제 이름을 정확히 불러서 놀랐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두고 검찰은 “이 대표가 머리가 좋고 이름을 잘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7급 주무관이던 B씨 이름도 기억하던 이 대표가 보다 가까이에서 일정을 함께 소화한 김 전 처장을 모를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 대표 측은 B씨는 이름이 특이해 기억에 잘 남는 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대표의 대학 동문인 B씨가 동문회에 참석하곤 했다는 점도 강조하고요. 성남시에 이 대표와 같은 대학 출신은 20~30명 수준이었다고도 했습니다. B씨는 이 대표가 출장자 모두를 기억할 만한 출장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검찰은 A씨를 상대로도 ‘기억력’을 파고들었습니다. A씨에게 “호주 출장에서 김 전 처장을 처음 본 후 대화를 안 했고 관심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고 했는데, 2021년 12월 언론에서 김 전 전 처장의 사망 소식을 보자마자 당시 출장 동행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했는가”라고 물은 겁니다. A씨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다만 ‘김 전 처장을 개인적으로 안다고 할 만한 사이인가’를 묻는 변호인 측 질문에는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 측은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포함해 기억할 만한 접촉이 없었던 김 전 처장을 이 대표가 “모른다”고 한 것을 허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안다’는 것은 주관적 인지 상태를 뜻하는 상대적 개념이라고 덧붙입니다. 이 대표로서는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검찰은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비롯해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충분히 공유한 터여서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몰랐을 리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런데도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모른다’고 허위로 발언했다는 겁니다.
어느 쪽 주장에 더 마음이 가시나요? “모른다”는 발언을 두고 이어지는 치열한 공방은 2주마다 법정에서 벌어집니다. 오는 28일에는 이 대표 측이 유 전 본부장을 상대로 반대신문에 나섭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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