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들이 지켜야할 원칙 두가지는?…‘반려식물 종합병원’ 가보니[현장에서]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도기 화분에 심은 피어리스(마취목)를 꺼내 뿌리의 흙을 흩어내던 주재천 반려식물병원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진찰받던 ‘식집사’(식물+집사) 이모씨(39)도 덩달아 긴장했다.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바깥쪽부터 썩은 부분을 잘라내자 살아남은 흰 뿌리가 몸통 쪽에 몇 가닥 남지 않았다. 배수가 잘되지 않은 화분에 물을 자주 준 것이 원인이었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종목인데 도기 안이 마를 새가 없으니 뿌리가 썩으며 곰팡이까지 퍼졌다.
쓸어내는 대로 이파리가 후드득 떨어지는 피어리스는 그대로 두면 고사할 가능성이 커 입원 결정이 내려졌다. 앞으로 열흘간 병원 입원실에서 상태를 지켜보게 된다. 시드는 것도, 치유되는 것도 느린 식물은 최소 열흘에서 3개월까지 지켜봐야 호전 여부를 알 수 있다.
주 원장은 “보통 식물이 말라 죽었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습으로 뿌리가 썩어 생기는 문제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병원을 찾은 이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진단받으러 왔는데 상태가 너무 심각해 충격이었다”고 했다. 피어리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 블루버드는 병원에서 분갈이를 하고 집에서 관리해보기로 했다.
“반려식물이잖아요.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라는 것을 보면 기뻐요. 애정을 쏟고 진심으로 아끼는데 자꾸 제 곁을 떠나니 마음이 아팠어요. 식물 입장에서 필요한 방임도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앞으로 건강하게 같이 살도록 노력할 거예요.”
지난 10일 문을 연 반려식물병원에는 매일 이씨와 같은 식집사들이 오전 10시~오후 5시 사전 예약을 꽉 채워 쉴새 없이 방문한다. 대개는 진찰해 증상을 파악하고 필요한 처방을 내리기까지 예약된 20~30분이 빠듯했다. 커피나무, 무늬몬스테라, 공작야자, 바질, 아레카야자 등 진찰받으러 온 식물 종류도 다양했다.
최모씨(31)는 겨우내 방에서 키운 칼라데아 프레디가 힘을 잃었다고 했다. 잎을 살펴보던 주 원장이 흰 종이 위에 잎을 털어 까만 점을 채취해 현미경으로 확대했다. 총채벌레였다. 분갈이 시기를 놓쳐 영양분이 부족했던 식물에 벌레까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분갈이 처방을 받은 후 집에서 난황유를 뿌려 벌레를 잡기로 했다.
식물을 가정에서 기르는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시들고 생기를 잃으면 쉽게 뽑아버렸던 과거와는 의미가 다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반려식물을 ‘입양’한 식집사들이 크게 늘었다. 식물을 통해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낮추는 정서적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농업기술센터 내 병원은 동네 꽃집이나 클리닉에서 도와줄 수 없는 상태의 식물이나 상담 창구가 없는 식집사를 위한 ‘상급 종합병원’이다. 농업 종사자 대상 상담·교육을 했던 센터 기능을 일반 시민으로 확대한 것이다.
서울시가 시내 4곳에 마련한 ‘반려식물 클리닉’에서도 약제 처방과 분갈이, 병충해 수준의 관리는 하지만 이곳에서는 입원 치료와 정밀진단 등까지 가능하다. 월 1회, 화분 3개씩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다.
이날 병원에는 응급 상황인 14개 화분이 입원치료 중이었다. 입원실 온도는 25~30도, 습도는 70%를 유지한다. 온실에서 간접 햇볕을 받아 생육이 가장 놓은 환경이라고 한다.
주 원장은 식집사들에게 두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물은 사람과 같이 ‘목마를 때’ 주고, ‘분갈이’와 ‘흙갈이’를 구분하는 것이다. 물은 광합성을 시작하는 아침에 줘야 한다. 흙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넣었을 때 축축하면 물을 줄 필요가 없다. 식물 몸집이 커져 화분이 좁아졌다면 원래 흙도 그대로 새 화분에 옮겨야 한다. 흙을 털면서 뿌리가 잘리기도 하는 탓이다.
“잎과 줄기 등을 잘 살피며 식물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의 상태도 보일 거예요.”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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