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사회를 꿈꾼다 … 나우리아트갤러리 이기원 대표
욕망이 그렇듯이 물질적인 풍요는 계속될수록 허기만 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21세기는 이성에 더해 감성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경제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이성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학문이 과학과 법률이다. 우리 회사에서 감성이 가장 필요한 분야가 어쩌면 공대생과 법대생 출신들일 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과학 만능주의자와 법률 만능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여기, 법률가를 꿈꾸다 자신이 좋아하던 미술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가꿔가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나우리아트갤러리 이기원 대표다. 누나는 변호사로, 남동생은 아트갤러리 대표로 같은 건물에서 역할 분담을 하고, 또 협업을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지킬과 하이드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성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없듯이 감성만으로 사는 사람도 없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듯 이성과 감성이 공존해서 이성 위의 감성, 감성 위의 이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 미대 진학을 꿈꾸다 법대로 진로를 변경했다고 들었습니다.
법(法)이란 글자를 풀면 물 흐른다는 뜻이잖아요. 법이나 미술이 종류만 다르지 흐르는 것이란 점에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을 미치다시피 좋아해서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너무 일찍부터 입시미술을 배운 탓에 입시그림이라는 틀 속에 갇혀서 자유롭게 내 그림세계를 펼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고, 또 당시에는 미술의 영역이 그리 넓지 않다보니 밥벌이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진로를 생각하게 된 거죠.
고3때까지 미대 진학을 위해 미술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다가 2학기쯤에 미대 진학의 꿈을 접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법시험에 합격한 누님의 모습도 크게 영향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법대를 목표로 재수를 시작했는데, 뭔가를 시작하면 온통 몰입하는 성격에 이번엔 미친 듯이 공부를 해보자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평생 할 공부의 절반을 이때 한 것 같습니다.
막상 법대 가서 석사, 박사 과정까지 하고, 또 관련된 일들을 하다 보니 미대나 법대나 자기 하기 나름이지 어느 하나 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았어요. 취미로 하는 미술도 전업으로 하는 미술만큼 즐겁더라고요. 다시 그림을 시작하고픈 마음에 얼마 전부터 갤러리에서 누드크로키 수업을 만들어 같이 참여하고 있는데, 너무나 설레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 갤러리 대표가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사람은 그런 거 같아요. 원래 좋아하던 건 마치 연어가 회귀하듯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미술을 좋아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주 전시회 관람도 하고, 마음 한켠에 늘 ‘내가 머물 곳이 여기가 아닐까’ 하는, 막연했지만 돌아갈 고향 같은 마음을 담고 있었어요.
우리 형제들이 아버지를 닮아 그런지 다들 미술을 좋아했는데, 누님이 새로 건물을 짓는 걸 곁에서 도우면서 한 층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해보고 싶어서 청사진을 만들어 제안을 했지요. 누님 역시 그림을 좋아하는 컬렉터이기도 해서 시작했어요. 누가 그러던군요, 50까지는 ‘국영수’로 살고, 이후는 ‘예체능’으로 살아야 즐겁게 살 수 있다고요.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원래 좋아하던 미술로 회귀하게 된 것 같습니다.
- 법률가와의 동거처럼 지킬과 하이드처럼 자기 안에도 그런 이성(논리)과 감성이 싸우고 있는 건가요?
판사도 눈물을 흘리고, 화가도 수학 원리를 그림에 구현하는 걸 보면 논리 속에 감성이 있고, 감성 속에 논리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법과 예술, 논리와 감성은 이분되는 것이라기보다 차지하는 비율의 차이라는 걸 요즘 많이 느낍니다.
예전에는 논리와 감성을 이분화 하는 것에 저도 익숙해 법을 공부할 때는 예술이 난해하고, 처음 예술을 할 때는 법이 매정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둘이 공존하며 수렴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을 하다 보니 전공은 법률을 했지만 예술쪽 피가 더 많이 흐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파격적인 예술가의 모습은 아니지만 늘 관심이 그쪽에 있기도 하고, 훌륭한 작품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한참이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거나 음악을 들으면서도 금방 빠져들게 되거든요.
-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앞으로 한 10년간 열심히 갤러리(아트센터)를 건강하게 잘 키워보고 싶습니다. 올해부터는 나우리 소식지를 준비하고 있는데, 법률 관련 정보나 가족 상담을 통한 가족이야기, 카페 요리이야기, 아트센터 문화와 미술이야기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나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게 되지 않을까요.
청년작가 지원 작품 공모전이나 개성 뚜렷한 작가분들의 전시회도 계속하고, 아직 못해본 해외 아트페어에도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또 갤러리에 한정하지 않고 복합공간인 이곳에서 미술 전시뿐 아니라 그간 해왔던 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능력 있는 강사분들과 좋은 인문 강좌도 계속해서 열어가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나우리 문화제를 열어 이 모든 것들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활동들을 계속해서 이곳을 하나의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가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악마가 어떤 사람을 파멸하고자 할 때는 계속 성공할 수 있게 돕는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그 사람은 그 과정에서 세 가지를 잊게 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족을 잊고, 다음에는 건강을 잊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잊게 돼서 결국 파멸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열심히 일하되 이 세 가지를 잊지 않는 삶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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