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내란, 국제사회 잘못” 반성 이어지는 이유
“현재 수단의 상황은 부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다.”
날로 악화하고 있는 수단의 분쟁 상황을 놓고 국제 외교 전문가들의 반성문이 줄을 잇고 있다. 수단 군벌을 잘못 이해한 국제사회가 분쟁 해결 과정에서 무장 군벌의 이익을 과도하게 대변한 것이 이번 사태의 부분적 원인이라는 반성이다. 정부군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과 신속지원군(RSF)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에게 민주화 의지를 기대했던 것 자체가 오류였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치러야하는 대가는 값비싸다. 세계 각국은 아비규환이 된 수단에서 자국민을 탈출시키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고, 남겨진 수단 시민들은 “수단을 혼란에 빠뜨린 국제사회가 자국민만 빼내가고 있다”며 공포와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
“수단 사태는 국제사회 잘못”
국제 정세 전문가들은 2019년 수단의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가 축출된 후 국제 사회가 민주 시민세력을 배제한 채 군벌과만 협상을 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수단 하르툼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인 코루드 카이르는 “국제사회는 알바시르를 축출한 두 무장군벌을 개혁가로 바라봤다. 이들을 향한 수많은 악수와 회유가 있었다”면서 “(외국의) 특사들은 수단 대중을 참여시키지 않고 군벌과만 대화했고, 이를 통해 군벌은 수단 국민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게 됐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이어 “이들이 수도 한복판에서 전면전을 벌여도 된다고 믿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재클린 번스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 ‘수단 분쟁은 일부 우리 탓이다’에서 국제사회의 잘못은 2005년 수단 내전 종식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유엔과 아프리카연합 등은 내전 후에도 수단에서 산발적인 분쟁이 이어지자 문제 해결을 위해 군벌 간 권력 나누기에 초점을 맞춘 평화협정에 집착했다. 번스 연구원은 “문제는 이런 식의 평화협정은 이를 지키도록 강제할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서방의 미숙한 개입이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도 나왔다. <미완의 수단 민주주의> 공저자 저스틴 린치는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 기고문에서 알바시르 퇴진 이후 미국과 서방이 수단에 민주정부를 세우려는 과정에서 군부까지 포함하는 과도정부를 구성하려 한 점을 지적했다. 이 같은 기대는 군부가 2021년 쿠데타를 일으키며 물거품이 됐다. 그는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군부의 약속은 공허한 것으로 판명됐다”면서 “부르한 장군과 다갈로 장군의 개혁과 민주주의 약속을 믿은 건 미국과 유엔 뿐”이라고 비판했다.
장기화 ‘악몽 시나리오’···각국 속속 교민 구출
10일차에 접어든 수단 내란 사태는 계속 악화하고 있다. 라마단 종료를 기리는 축제 기간인 이드 알피트르마저 종료되며 전면적인 내전으로 치달을지 모른단 우려가 나온다. 가디언에 따르면, 수단 내 한 국제 비정부기구(NGO)는 직원들에게 수일 내 “전면전”을 예상해야 한다며 “더 격렬한 폭력이 전국적으로 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앨런 보스웰 국장은 “외부 행위자와 수단 무장조직이 개입하는 전면적 내전이 된다면 국가로서의 수단은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기에 더해 그동안 수단에 영향을 미쳐온 주변국들이 이번 사태를 두고 각기 셈속을 달리하며 사태 장기화에 일조하고 있다.
리비아 군벌인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은 RSF 측에 정보를 전달하고 연료를 공급했으며, 지난 2~4월 RSF의 시가전 훈련을 도왔다고 가디언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현 내란이 여러 외세의 ‘대리전’으로 번지는 “악몽 시나리오” 역시 우려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정부군과 밀접한 이집트는 이번 사태를 두고 공개적으로 한쪽 편을 들지는 않고 있다. BBC는 현재 이집트의 경제난과 한쪽 편을 들었을 경우의 리스크 때문에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이집트의 ‘중립적 입장’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와그너그룹이 수단 정부군과 RSF의 무력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고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이 관계자들은 “와그너그룹이 지대공 미사일을 포함한 강력한 무기를 RSF에 제안했고, 지난 21일까지만 하더라도 다갈로 장군이 이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 사태를 일으킨 두 장군 또한 물러서거나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앞서 네차례 휴전이 무색하게 교전을 이어갔다. 교전이 격화되면서 현재까지 4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수단인 수만명이 인접한 이집트, 차드, 남수단 등으로 목숨을 건 피란길에 올랐다.
수단 수도인 하르툼에 거주하는 무함마드 함만은 CNN에 “집에서 유탄에 맞아 죽거나 굶주림이나 목마름으로 죽는 것보다는 살려고 애쓰다가 죽는 편이 낫다”면서 아내와 네 자녀를 데리고 피란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하르툼은 심각한 식량과 식수난에 처해있다. 또 다른 주민은 “식량과 식수가 떨어졌을 때 품위있게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며 “지금 하르툼 거리에는 버려진 시신이 놓여있고, 군용차가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수단에서 외교관과 자국민을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24일까지 한국,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이집트 등이 자국민 구출 작전을 벌이고 있으나 교전이 격화하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프랑스 정부는 군벌이 호송차량에 총격을 가해 프랑스 시민 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상황이 위험해 피란 작전을 잡시 중단해야 했다고 밝혔다.
외국인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 더욱 격화될 내전 한복판에 남겨질 수단인들의 공포는 커져가고 있다. 수단 전직 언론인인 달리아 모하메드 압델모니엠은 트위터를 통해 “당신들(국제사회)은 우리를 이 혼란에 빠뜨렸다”며 “이제는 교민들을 빼내며 우리를 이 두 살인마 사이코패스에게 남겨뒀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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