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인공지능과 전파공학의 미래
인공지능(AI)은 과연 창의력을 갖추고 있을까. 얼마 전 AI 발전에 관해 학과 교수와 대화를 나누다 재미 삼아 AI 기술에 사용되는 개념을 사자성어로 풀어본 적이 있다. 데이터 분류 과정에서 잘못된 결과를 출력하는 '분류오류'(Misclassification)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 어울린다. 학습 데이터에만 치우쳐서 전반적 예측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과적합'(overfitting)은 이관규천(以管窺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오버피팅을 방지하기 위한 '정규화'(regularization)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적당해 보인다.
여기까지는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AI 자체를 사자성어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이르자 의견이 갈렸다. 필자는 격물치지(格物致知), 다른 교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골랐다. AI를 온고지신으로 해석하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AI는 내삽에는 최적화돼 있지만 외삽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회·자연·공학 현상에서 측정되지 않은 데이터 영역에 대한 AI 예측은 제대로 성능을 내지 못한다는 점도 반론을 뒷받침했다. 새로운 영역 탐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등한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런가.
그러나 필자의 확신은 최근 자연어 처리 기반 '챗GPT'의 등장으로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포머라는 생성적 모델은 자연어 처리에 특화된 AI다. 놀라운 점은 언어 문법과 어휘 학습에 그치지 않고 사람이 말을 하는 언어 행위의 본질, 즉 논리적 사고 능력까지 학습했다는 것이다.
말을 가르쳤더니 논리적 사고도 같이 깨우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 사고를 배워서 상당한 수준의 지식 비교 분석 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금 보고되는 오류도 수정되면 훨씬 더 정확한 성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 분야에서 특정 문제를 푸는 데 사용하는 개념을 전혀 다른 분야에 적용해 유사한 문제를 찾아내고 풀어낼 수 있는 수준의 '창의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공학에서 독창성과 창의성은 '새로운 개념의 시작'이라는 본질적 의미뿐만 아니라 기존 기술을 다른 분야에 응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천문학에서 쓰이는 CLEAN 알고리즘이 레이더 클러스터 분류에 적용되거나 유전자 알고리즘이 전자기(EM) 구조 최적화 설계에 사용됐던 사례가 그렇다.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도 대수 기하학의 개념을 접목해 수학계 난제인 조합론 문제를 풀어내는 창의성을 발휘했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하는 AI와 더욱 강력해질 AI는 온전한 의미의 창의성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온고지신'의 응용 능력을 갖춰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 모델은 전파공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1860년대 발표된 맥스웰 방정식을 기본으로 삼아 여전히 아날로그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전자파 분야 역시 디지털의 또 다른 끝에 위치한 AI와 만나 커다란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맥스웰의 편미분 방정식을 풀어야만 가능하던 전자기(EM) 구조의 해석 및 설계를 빅데이터 기반 AI로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인버스 스캐터링 분야에서는 표적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데 이미 AI를 활용하고 있고, 레이더의 표적 탐지 및 식별에 관한 딥러닝 기반 연구도 활발히 진행돼 왔다.
또 생성적 모델은 머지않아 새로운 안테나 및 EM 구조를 결정하는 창의적 영역에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전파 공학의 많은 부분이 AI로 대체돼 EM 지식 없이도 원하는 구조 설계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알파고가 바둑에서 새로운 수를 만들어 내듯 AI가 새로운 EM 구조를 창조해 낼 가능성을 예견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에서는 전파 공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무엇보다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 뿐만 아니라 AI보다 높은 지식 수준으로 AI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나아가 AI를 뛰어넘는 창의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 내야 대학과 사람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세돌이 4국 대결에서 '끼인수'를 던져 알파고를 혼란에 빠뜨리고 승리했듯 EM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AI가 따라올 수 없는 창의력을 지닌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원론적 답변을 할 수밖에 없는 AI 혁명 시대에 전자파 학계 고민도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영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상임이사) youngkim@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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