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술 출판 최대 고객 중국, 코로나19 과학적 증거 지우나...美 언론 의혹 제기
학술지 발표된 논문 12건 철회
연구 데이터 삭제·수정하기도
과학계 “팬데믹 막으려면 데이터 공유 중요해”
중국 정부가 자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상황을 감추고, 발원지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 연구진은 물론 국제 학술지 출판사에도 압박을 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간 기업인 학술지 출판사는 최대 고객인 중국 정부의 요구를 들어줘 이미 게재된 논문을 철회한 사례도 확인됐다.
뉴욕타임스는 23일(현지 시각) 중국 정부가 연구자들에게 연구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의 압력으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가 제때에 공유되지 못한 탓에 다른 국가 보건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국의 연구 개입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초부터 시작됐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베이징 미생물·감염병 연구소, 미국 플로리라대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2020년 2월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코로나의 의학적 특징을 담은 논문을 공개했다. 이 논문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 양상과 환자들의 상태를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논문이 소개되고 11일이 지나서 연구진은 돌연 게재를 철회했다. 연구진은 철회 이유에 대해 “논문 데이터가 마지막으로 수집된 후 한 달 사이 확진 사례가 18배 가까이 늘어 데이터의 최신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제한되던 시기였던 만큼 각국 보건당국은 철회되기 전 논문을 찾아 연구에 인용하거나 방역 정책에 반영하며 활용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아이라 론지니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통제는 다른 연구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중국은 과학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조사를 방해하는 등 압력을 넣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검열 논란은 중국 연구진이 우한 시장에서 수집한 유전자를 최근 공개하며 다시 불거졌다. 중국은 최근 국제 사회의 코로나 관련 데이터 공개 요구에 따라 그간 공개하지 않고 있던 자료를 하나씩 공개하고 있다. 2020년 1월 화난 수산 시장에서 유전자를 분석한 데이터도 지난달 바이러스의 변이를 추적할 수 있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인 국제인플루엔자정보공유기구(GISAID)에 공개됐다.
중국 연구진이 공개한 데이터에는 라쿤의 유전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는데, 지금까지 중국이 코로나는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서 시작했다고 주장한 것과 정반대의 데이터다. 또 화난 시장에서 코로나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알 수 있는 단서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해당 데이터가 공개되자 전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많은 연구진이 중국 연구진에 공동 연구 제안을 보냈다.
그러나 해당 데이터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데이터는 돌연 사라졌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데이터를 삭제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과학계에서는 중국의 압박으로 인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논문 감시 사이트 ‘리스트렉션 워치’에 따르면 중국의 연구 개입으로 지금까지 12개 이상의 논문이 철회된 것으로 나타났다. 리스트렉션 워치 설립자인 이반 오란스키는 “일반적으로 학술지는 연구 부정이나 비윤리적인 연구로 인한 철회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번 사례들을 유난히 빠른 속도로 철회가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의해 철회된 논문은 우한 시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사례를 제외하고도 중국 남부의 어린이 환자에 대한 연구, 중국 의료인들의 우울증·불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비롯해 다양했다. 실제로 중국은 코로나 관련 연구를 담당하는 별도의 태스크 포스(TF) 팀을 만들어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에 대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란스키는 “학술지 출판사는 자신들의 최대 고객인 중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출판사가 중국의 검열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논문이 철회되지는 않았지만, 핵심 데이터가 바뀌기도 했다. 중국과학원 연구진은 2020년 3월 국제 학술지 ‘감염병 임상학’에 우한 시장에서 코로나에 확진된 시기와 전파 동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2019년 12월에 확진된 사례를 소개했지만, 두 달 후 확진 시기를 2020년 1월로 수정했다.
논문뿐만 아니라 코로나 연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중국 연구진의 데이터가 사라지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유전체 데이터베이스인 ‘시퀀스 리드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미 국립의학도서관은 “중국 연구진이 올린 데이터에 대해서 삭제 요청이 반복해서 들어왔다”며 “팬데믹(대유행) 기간 중 외부 요청으로 데이터를 삭제한 것은 중국이 유일한 사례”라고 밝혔다.
중국은 이달 1일 자체 학술 포털인 ‘국가지식인프라’에 대한 해외 접근을 차단하며 데이터 공개를 장려하던 기조를 다시 폐쇄적으로 전환했다. 중국의 이런 태도 변화에 과학계는 우려를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베르지니 꾸르띠에-오르고고조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팬데믹과 관련한 염기서열, 특히 초기 샘플에 관련된 데이터는 전 세계 보건 전문가들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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