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랜드' 1662억 물게 된 1필지…무능한 '행정'에 '민간'만 이득 챙겼다
민간 절대 유리한 협약 변경에 창원시 펜션 1필지 출연 지연, '협약 해지' 빌미 제공
'의회 동의안' 불리한 내용 감추고 유리한 내용 부각
경남도 손 놓은 소송 결과 1662억 패소, 중요 사실 알고도 누락
6명 중징계 등 공무원 34명 징계 처분 요구, 위법 부당 업무 처리 형사 고발
1662억 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민간사업자에게 물어주는 것으로 끝난 '마산로봇랜드 해지시지급금 소송 사태'는 대형 사업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하는 등 책임을 망각한 경남도·창원시·로봇랜드재단 모두의 잘못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남도 감사위원회는 24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봇랜드 조성사업 관련 최종 감사 결과를 내놨다.
도 감사위는 경남도·창원시·로봇랜드재단이 민간사업자와의 항소심에서 패한 직후인 지난 1월 소송 관련 감사 결과를 내놓은 지 3개월 만에 최종 판단을 내렸는데, 과연 민간사업자를 위한 행정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총체적 부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민간사업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변경된 협약과 펜션부지 14필지 중 단 '1필지'를 민간사업자에게 이전하지 않아 실시협약 해지의 빌미를 제공했다.
막대한 재정 손실로 도민이 피해를 본 소송을 패소한 이유도 중요한 사실을 누락하는 등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도 감사위는 가장 책임이 무거운 공무원 6명은 중징계, 9명 경징계, 19명 훈계 등 34명의 징계 처분을 요구하고, 로봇랜드재단의 위법 부당한 업무 처리 등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민간에게 절대 유리한 협약 변경…유리한 내용 부각 '의회동의안' 거짓보고
우선 경남도·창원시·로봇랜드재단과 민간사업자가 2015년 9월 체결한 변경 실시협약은 민간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1단계 민간사업비 1천억 원 이상' 문구를 삭제해 투자 의무를 면제한 반면 '준공시점 기준 해지시지급금 1천억 원'으로 확정하면서 민간사업자는 실제 투자금액과 상관 없이 준공만 하면 1천억 원이 보장되도록 했다. 심지어 민간사업자 귀책 사유도 '운영 개시일로부터 1년간 해지시지급금 1천억 원 보장'으로 설계했다.
또, 민간사업자가 사업을 포기하면 행정은 협약 해지하도록 의무 규정으로 변경하고, 행정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민간사업자가 협약 해지가 가능하게 했다.
이는 민간사업자가 1단계(테마파크·로봇연구센터·컨벤션센터) 사업만 수행하고 2단계(관광·숙박시설 ) 사업 추진이 불투명한 구조로 실시협약을 변경한거나 다름없다.
게다가 '해지시지급금 의회 동의안'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해 보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한마디로 행정에 불리한 내용은 감추고 유리한 내용만 부각했다.
해지시지급금이 민간투자법보다 18.5~25% 적은 금액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고하고, 최종안이 아닌 행정에 유리한 협상 진행 중인 안으로 법률 자문을 받아 동의안 설명 근거 자료로 활용했으며, 해지시지급금 타당성 용역 4가지 시나리오 중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안만 인용해 보고했다.
테마파크 공사 검증 없이 계약…관리·감독 망각한 공무원
경남도와 재단은 테마파크 조성공사 실시설계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건설기술심의위원회 심의·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설계도서 없이 공사 계약을 체결하고 착공하도록 허용했다. 민간사업자는 설계도서를 제출 기한보다 190여 일이 지난 뒤 초안을 제출하는 등 협약을 어겼지만, 도와 재단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재단은 착공 이후 시행한 민간사업비 적정성 검토 용역 결과를 검증하지 않았고, 협약상 의무가 없는 데도 준공 시점에 민간사업비 적정성 검토를 다시 시행해 공사비 25억 원을 증액하는 근거로 활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재단은 또, 테마파크 실시설계 감리를 하지 않은 데 이어 공사 부문에서도 전체 공사비 781억 원 중 241억 원 규모를 감리에서 빼 민간사업자가 자체 감독하고 준공 처리하도록 했다.
또, 공사 미완료 상태에서 준공검사를 하고 민간사업자의 준공 검사는 어떻게 했는지 확인되지 않는 등 공사 관리·감독 업무 전반을 소홀하게 대충 처리했다.
창원시 '1필지' 출연 지연 협약 해지 빌미
펜션부지 14필지 중 고작 1필지를 민간사업자에 이전하지 않아 채무불이행 사태의 빌미를 만들어 협약 해지로 이어진 점은 뼈아프다.
창원시는 실시협약 등에 따라 분담금 대신 부지를 출연해야 하지만, 337억 원을 들여 취득한 407필지를 재단에 직접 출연하지 않고, 재단이 창원시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 소송을 제기하도록 해 출연하는 등 이른바 '져주기식' 소송으로 소극적인 출연 의무를 이행했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변호사 비용은 물론 소송 시간만 해도 5개월에 이르렀다.
도 감사위는 1필지 출연 지연은 실시협약 해지의 원인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2019년 5월~8월 창원시는 재단의 1필지 이전 요청에 대해 '국공유지 소유권 이전 검토 보고'에서 시급한 상황을 인지하고도 유·무상 출연 또는 소송 등 명확한 출연 방법을 결정해 주지 않고 이전을 주저했다.
도 감사위는 "결국 민간사업자가 실시협약 해지 빌미와 2단계 사업 이행 의무를 비난 없이 면탈하는 명분을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재단 역시 채무불이행 사태 가능성을 인지했는데도 창원시와 유선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도지사에게 보고를 누락하는 등 직무를 소홀히 했다. 경남도도 종합적인 정책적 판단을 하지 못한 데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민간사업자와의 거액 소송, 중요 사실 누락하고 대응 소홀 경남도·재단
2020년 2월 민간사업자는 1100억 원대 소송을 걸었다. 그 끝은 항소심까지 가는 동안 이자까지 더해 무려 1662억 원을 물어 준 행정의 참패였다.
그러나 거액의 소송 과정에서도 경남도와 재단의 대응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민간사업자는 사업 계획 변경에 따른 대출상황기일 연장을 요구하지 않았고, 대주 대리기관의 두 차례 대출 상환계획 제출 요청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는데도 이런 내용을 소송 변론 과정에서 주장하지 않았다.
또, 재단은 민간사업자가 감리 없이 부당하게 준공 처리한 241억 원 규모의 준공검사조서가 준공 기한이 한참 지난 뒤에 제출하는 등 여러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송의 주요 쟁점이었던 '건설기간' 판단에 대해 이 사실을 주장하지 않았고, '산업부 준공 확인'이 되지 않아 건설 기간 중이라는 인정받기 어려운 주장으로 대응했다.
특히, 소송 대응을 재단 직원으로만 구성된 법무지원팀을 만들어 전담하는 등 경남도는 사실상 손을 놓고 대응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밖에 재단 신규 직원 채용 당시 면접위원 선정 부적정, 채용절차 미준수 등 부당한 채용 업무 처리도 감사에서 지적됐다.
경남도 배종궐 감사위원장은 "소송 완전 패소는 재단이 민간사업자의 여러 문제점을 알면서도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련 사실을 은폐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도정의 과오를 이번 도정에서 떠안게 된 점은 유감"이라며 "막대한 재정 손실로 도민이 피해를 본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로봇랜드 소송은 어떻게 시작됐나
앞서 민간사업자는 "펜션 부지를 매각해 대출금 50억 원을 상환해야 하지만, 로봇랜드재단이 부지를 넘겨주지 않아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했다"며 모든 책임을 경남도 등 행정에 돌렸다. 그리고 실시협약 해지를 통보한 이후 2020년 2월 1100억 원대 해지시 지급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인 부산고법 창원제2민사부도 지난 1월 12일 로봇랜드 주식회사가 경남도·창원시·로봇랜드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해지시지급금 청구 소송에서 민간사업자의 실시협약 해지를 인정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2021년 10월 1심 패소 당시 이자까지 포함해 1448억 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2심까지 지면서 그사이 200억 원이 넘는 이자가 또 불어났고, 상고를 포기하면서 1662억 원을 민간사업자에게 물어줬다.
해지시지급금은 민간사업자가 1단계 민간사업인 로봇랜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투입된 비용 1천억 원으로, 테마파크는 준공 후 로봇랜드 재단에 기부채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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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CBS 최호영 기자 isaac0421@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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