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쿨파] 미국 대러 제재가 오히려 위안화 굴기 도와

박형기 기자 2023. 4. 2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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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3.4.5/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페트로-달러' 체제가 깨지면서 미국의 원유시장 패권이 크게 흔들린 데 이어 달러 패권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 CCTV는 24일 지난해 중국의 해외 무역에서 위안화 결제 규모가 전년 대비 37%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러시아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위안화가 달러를 제치고 거래량 1위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는 사상 최초다.

지난해 위안화 결제 비중이 급증한 것은 미국 등 서방이 대러 경제 제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러 제재가 오히려 위안화 굴기를 도와준 셈이다.

서울 중구 외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를 확인하고 있다. 2020.10.22/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지난해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의 무역 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에서 러시아를 축출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국제 무역에서 달러 거래를 할 수 없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러시아는 중국과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도입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반미적 성향이 강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여러 나라가 중국과 원유거래에 위안화 결제를 도입했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가 깨진 것이다. 페트로 달러 체제는 미국이 사우디와 원유 결제를 달러로만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 체제가 깨지면서 미국의 원유 패권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후 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도 중국과 거래에서 위안화를 도입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최근 중국을 방문, “왜 국제거래에서 반드시 달러를 써야 하느냐”며 "중국과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더욱 늘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방글라데시도 위안화 결제를 도입했다. 방글라데시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이슬람 국가들도 위안화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위안화가 국제 무역거래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세계 전체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은 4.5%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의 2%에서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서방도 이 같은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미국 외교협회 연설에서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분열되면서 기축통화 달러 위상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15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 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지난 16일 CNN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달러화 지위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그는 그러나 미국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는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달러의 지배는 시장의 신뢰와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공정한 법 집행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며 아직까지 이 같은 제도적 인프라를 갖춘 나라를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위안화가 국제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아직은 조족지혈이다. 미국 언론도 위안화의 약진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달러 패권이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만약 달러 패권이 조금만 흔들려도 미국 경제는 엄청난 충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매년 막대한 규모의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를 국채 발행을 통해 메우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무제한적 발권력을 이용, 이른바 쌍둥이 적자를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축퉁화의 지위가 흔들리면 미국은 달러를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는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아직은 위안화 비중이 미미하지만 앞으로 무역거래에서 위안화 결제 비중이 더욱 늘 것이란 선행지표가 있다. 세계 각국의 외화 준비금 중 달러 보유 비중이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SLJ 자산운용에 따르면 20년 전인 2003년 미국 달러는 전세계 총 준비금의 73%를 차지했다. 그러나 서서히 하락해 2021년에 55%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2022년에는 47%로 급락했다.

2022년 한해에만 8%포인트 급락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이후 서방이 대러 제재를 펼치자 많은 국가들이 대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SLJ 자산운용은 "1년 만에 8%포인트 하락한 것은 매우 예외적이며, 이는 연간 평균 하락 속도의 10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달러 보유 비중 축소는 앞으로 무역거래에서 달러 결제 비중이 더욱 축소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선행지표다.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지만 달러 패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sino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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