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안 주려고 위장 이혼”… ‘나쁜집주인’ 신상공개 사이트 등장

이가영 기자 2023. 4. 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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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나쁜 집주인' 홈페이지

전세 사기 피해가 전국에서 속출하는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오는 9월 국토교통부는 악성 임대인 명단을 공개할 예정인데, 이보다 앞서 피해자들이 직접 나선 셈이다. 일각에서는 신상공개를 통해 추가 피해 방지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한편에서는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나쁜 집주인을 공개합니다’ 홈페이지에는 주택 1000여채를 보유하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이른바 ‘빌라왕’ 김모(43)씨를 비롯해 총 7명의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이 공개돼 있다. 홈페이지에는 악성 임대인 신상정보뿐만 아니라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 온라인 커뮤니티와 전세 사기 관련 기사, 전세 사기 예방법 등의 게시물도 정리돼 있다.

‘나쁜 집주인’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이메일로 전세사기 피해 내용을 제보하면 운영진은 서류를 검토한 후 임대인에게 먼저 신상공개 사실을 통보한다. 그로부터 2주 뒤 홈페이지에 신상을 공개한다.

운영진은 “전세금은 세입자의 전 재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고, 계약 당일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전세금을 주지 않는 전세사기꾼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고 했다. 이어 “세입자가 평생 피땀 흘려 번 돈을 갈취하고도 벌금형 정도의 가벼운 처벌로 죗값을 치른 후 잘 먹고 잘 사는 나쁜 집주인을 고발한다”고 홈페이지를 만든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로 피해자 406명으로부터 오피스텔 보증금 명목으로 약 248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임대인 A씨가 보증금 반환 소송이 제기되자 배우자와 협의 이혼한 사례가 있었다. A씨는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배우자에게 아파트와 공장용지 등 토지를 증여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수원지법은 지난 19일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에게 8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배드파더스 구본창 대표.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는 미성년 자녀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온 ‘배드파더스’ 사이트의 취지와 비슷하다.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생긴 이후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양육비를 내지 않는 이들에 대해 출국금지 및 명단공개를 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다. 2021년 7월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달 14일까지 총 45명의 명단공개가 이뤄졌다.

하지만 배드파터스 대표 구본창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때문에 ‘나쁜집주인’ 역시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구씨는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배드파더스의 신상공개 행위에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면서도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법적 제도 마련 등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구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서울과 인천, 경기 동탄, 대전, 부산 등 곳곳에서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나쁜집주인’ 사이트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네티즌들은 “한두푼도 아닌 보증금을 안 주는데 화 안 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사적제재 우려할 시간에 피해자 보호부터 해라” “만천하에 전세사기범들 공개해야 또 다른 사기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광교에서 열린 청년 전세 사기 예방 캠페인에 참가해 임차주택 시세와 집주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안심전세앱'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오는 9월부터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전세 앱에서 악성 임대인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월 말 상습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악성 임대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신상 공개 대상이 되는 악성 임대인은 ▲총 2억원 이상의 임차보증금을 변제하지 않아 HUG가 대신 내어줬고 ▲이에 따른 구상채무 발생일로부터 3년 이내에 2건 이상의 임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이다. 임대인의 이름, 나이, 주소, 임차보증금 반환 채무에 관한 사항 등이 공개된다. HUG는 개정 주택도시기금법이 시행되는 9월 29일에 맞춰 악성 임대인 명단을 ‘안심전세앱 2.0′을 통해 공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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