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은 환경·사회적 책임 회피 수단···기후 범죄 책임 져야”
정부·기업의 안일한 기후위기 대응을 비판하며 직접행동을 한 활동가들이 또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후단체인 멸종반란한국·멸종저항서울 소속 활동가 6명은 2021년 3월 서울 여의도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사 1층 출입문을 막고 지붕을 점거했고 지난 20일 열린 1심 재판에서 벌금 900만원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활동가들의 정당성을 인정해 검찰 구형보다는 가벼운 형량을 선고했지만 유죄판결은 피할 수 없었다.
현실과 달리 활동가가 아닌 기업·정부가 기후위기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재판이 얼마전에 열렸다. 지난 7~9일 광주 비엔날레 네덜란드파빌리온에서 열렸던 ‘세대 간 기후 범죄 재판소’ 법정이다. ‘세대 간 기후 범죄 재판소’는 네덜란드 문화·예술기관인 ‘프레이머 프레임드’가 처음 라다 더수자 영국 웨스터민스터 법학대학 교수, 네덜란드 요나스 스탈 작가와 함께 제작한 전시다. 재판정에서 판사를 맡았던 법학자 라다 더수자 교수를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만났다. 더수자 교수는 “국가, 기업 등 ‘법인격’이라는 개념이 환경적·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인도에서 활동가, 변호사를 거쳐 교수가 된 그는 ‘법’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다. 그는 “사회운동은 문제를 잘 분석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잘 조직한다”라면서도 “하지만 해결책으로 오면 다시 (문제의 원인인) ‘법’을 말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의 근거가 된 ‘세대 간 기후 범죄법’은 더수자 교수가 평생의 경험을 녹여내 만든 ‘급진적 상상’이다. 현대의 법이 실제 ‘사람’이 아닌 법인에 인간과 같은 권리를 주는 것과 달리 ‘세대 간 기후 범죄법’에서는 법인의 권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정의한 ‘법인’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환경적, 사회적, 법적 책임이나 의무를 제한할 목적으로 설립한 인위적인 법적 조직’이다. 더수자 교수는 “사람이라면 질문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지만, 법인에 소속된 개인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법인이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며 “법인이 환경적·사회적 책임의 면제 수단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의 재판의 법원은 새만금 신공항을 추진하는 정부,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한 두산,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인 포스코 등을 유죄로 판결했다. 법에서는 법인이 장기·단기 기후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등 파괴 행위로 어떤 종의 번식에 필요한 조건에 악영향을 미친 경우는 ‘세대 간 기후 범죄’로 정의한다. 범죄의 책임은 법인의 ‘해체’로 지게 한다. 해체된 법인은 사회의 자산이 된다. 더수자 교수는 “기업들은 기후위기를 유발한 것을 이유로 처벌 받지 않는다”라며 “자연환경과 다른 종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만 처벌을 받는 이 상황이 과연 동등한가”라고 물었다.
한국 정부가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덜어준 것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더수자 교수는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이 왜 그것을 멈추지 않는지 질문해야 한다”라며 “누가 탄소를 대기 중에 내뿜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산업계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 법체계 안에서 ‘세대 간 기후 범죄법’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더수자 교수는 사람의 상상력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 식민주의도 결국은 종식됐다”라며 “세대 간 기후 범죄 재판소를 통해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개념’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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