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훈장 받고 세부에서 제2의 인생 개척하는 한국인 잠수사
필리핀 세부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이중현씨(55)는 필리핀 대통령으로부터 바카스 파랑갈(Bakas Parangal)이란 훈장을 2012년 받았다. 이 훈장은 재난구호 과정에서 모범적이며 비범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에게 수여된다.
2014년 필리핀에 파병돼 태풍 ‘하이옌’ 피해 복구 임무를 수행했던 한국 아라우부대에게 수여된 적이 있지만 민간인 자격으로 한국인이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현재 세부에서 풀빌라와 게스트하우스를 포함한 ‘수중세상 다이브’라는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는 그를 24일 현지에서 만났다.
“2012년 8월18일이었습니다. 댱시 필리핀 내무부 장관인 제시 로브레도와 보좌관 등 4명이 탑승한 경비행기가 필리핀 막탄 라푸라푸 시티에서 나가로 향하던 중 엔진고장으로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했습니다. 사고 다음 날 아침 필리핀 경찰청에서 다급히 수색구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동료 잠수사 2명과 함께 세부 막탄 공항에 마련된 헬기를 타고 추락현장으로 긴급히 달려갔다. 수심 50m 아래까지 잠수해 구조해 본 경험이 없는 필리핀 구조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씨는 잠수장비를 매고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닷속 62m 아래에 처참하게 부서진 경비행기 모습이 보였다. 보좌관은 경비행기가 추락하자 문을 열고 탈출했지만 장관 등 탑승자 2명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는 이들을 바닷 속에서 수습했다.
그는 “필리핀에서 사는 현지 주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수색활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온 후 훈장을 주기로 했다는 당국의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해 9월 12일 당시 필리핀 대통령이었던 베니그노 아키노 3세가 모범적이고 용기 있는 구조활동을 펼쳤다면서 그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당시 아키노 3세 대통령이 훈장을 걸어주면서 ‘한국인 다이버가 최고’라고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라면서 “한국인 다이버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지만 수중구조에 대한 책임감도 크게 느꼈다”고 밝혔다.
2013년 8월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대형 참사가 필리핀에서 발생했다. 승객 및 승무원 800여명과 컨테이너 104개를 실은 대형 여객선이 필리핀 세부항 인근에서 화물선과 충돌한 뒤 침몰한 것이다. 750여명은 구조됐지만 실종자도 적지 않았다.
“지원요청을 받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뇌우와 강한 해류, 폭풍우 등 날씨가 최악이었어요. 한국인 동료 잠수사들과 함께 생존자를 구조하고,시신을 수습했지만 해류에 휩쓸려 나간 승객들도 부지기수였어요.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침몰된 여객선은 아직도 수장된 상태로, 몇 명이 실종됐는지 정확한 집계조차 없습니다.”
이씨는 과거 한국에서 공수부대 특전여단에서 군 복무하는 동안 스쿠버 다이빙 및 인명구조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역 이후에도 대심도 잠수와 질소마취 관리, 산소중독 관리 등 고난이도 다이빙 기술 과정을 수련했다.
한국에서 토목설계사무소를 운영했다는 그는 “지나친 격무와 접대문화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인지 위암 3기 판정을 받아 위 절제술과 항암치료를 받게 됐다”라며 “이를 계기로 제2의 인생을 살자고 결심했고, 2005년 사업을 접고 필리핀 세부행 비행기를 탔다”라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에서 수중체험 전용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구조 잠수사 양성도 병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양성한 다이버만 6000여명에 달한다.
“이곳에 살면서 앞으로도 내 일에 충실할 겁니다. 교육생에게는 바다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배출되는 교육생들이 향후 해상 안전을 책임지는 민간사절이 될 것입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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