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결단에…野 ‘돈 봉투’ 연루자들의 ‘탈당 딜레마’
‘민형배 복당’ 전망도 먹구름?…“국민여론 악화 시점서 자중해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고 당일로 민주당을 탈당하겠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22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이 같이 '전격 탈당'을 선언했다. 당을 휩쓴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에선 의혹 핵심 연루자들을 향한 탈당 요구가 더 거세질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정치권에선 '공천 페널티'를 비롯한 각종 딜레마 때문에 지도부나 의혹 연루자들이나 출당·탈당을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도부 "LH 사태와 돈 봉투 사안 달라…선뜻 조치 어려워"
송 전 대표는 22일 파리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탈당을 선언했다. 이어 "저를 도와준 사람을 괴롭히는 수많은 억측과 논란에 대해서도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당당하게 돌파해나가겠다"며 24일 귀국도 예고했다.
송 전 대표는 앞서 지난해 불거졌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 부동산 투기' 사건 때도 지도부로서 투기 의혹 연루 의원들에게 탈당 및 출당을 권유하며 칼을 빼든 전적이 있다. 송 전 대표도 이를 언급하며 "같은 원칙은 저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에선 의혹 연루 의원들을 향한 탈당 촉구를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다. 지난 LH 의혹과 이번 돈 봉투 의혹은 사안 자체가 다르다는 주장도 지도부에서 나왔다. 지도부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은 개인 비리로 공표됐었지만 이번 사건은 아직 현역 의원들이 완전히 특정되지 않았다"며 "당이 선제적으로 조치를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23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의혹 연루 의원들에게 탈당 및 출당을 요구할지' 여부에 대해 "송 전 대표가 귀국하고 나면 사건에 대한 규명이 좀 더 빨라질 것이니 진행상황을 보며 거기에 맞는 당 대응이 있을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나 "(수사) 결과에 따라 향후 상응하는 조처를 하고 당의 근본적 재발 방지책을 만들겠다"고 전한 바 있다.
연루 의원들 고심 속…"지도부 읍참마속해야" 목소리도
다만 민주당 내에선 지도부가 늑장 대응을 하고 있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비명(비이재명)계는 물론 친명(친이재명)계 일각에서도 핵심 연루자들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 시행과 출당 조치는 물론, 당내 고강도 혁신 방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도부 입장에선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비명계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의혹 자체조사를 시행하지 않기로 방침을 전한 지도부를 향해 "그러면 당대표나 지도부는 뭐 하러 있나"라며 "이 대표가 며칠 전에 기자회견에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강제수사권이 없다든가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자체 조사는 안 한다, 저는 매우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당내 윤리감찰원이나 외부 기구를 통해서라도 자체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조직의 자체 정화 조사는 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며 "해야 되는데 그거를 미리 포기하는 거는 지도부의 리더십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송 전 대표가 탈당했기 때문에 (당에서) 한숨을 돌린다고 한다면 그건 꼬리 자르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가세했다. 그는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민주당이 그냥 송 전 대표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저는 대단히 안 좋다"며 "특별한 전문적인 조사 기구를 통해서 사실에 접근해 볼 노력이 대단히 중요한 국면"이라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를 제외한 의혹 연루 의원들이 자진 탈당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차기 총선 공천과 관련해 탈당 전력자들에 대한 페널티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당 공천제도TF가 지도부에 보고한 총선 공천 룰에 따르면, 탈당 전력자는 감산 페널티 적용은 물론 탈당 전력도 당원들에게 공표될 예정이다. 당에서 리스크 없이 활동해온 후보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도부가 더 강경하게 칼을 꺼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친명계 민주당 초선 의원도 이날 시사저널과 만나 "이런 상황일수록 지도부 차원에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더욱 강하게 조치를 취해나가야 한다"며 "사태를 빠르게 수습해야 내년 총선에서의 리스크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지도부에서) 늦기 전에 당에 부담되지 않는 선택지를 내놓아야 한다"며 "특히 일각에선 현 대표도 사법 리스크에 연루된 만큼 현 지도부가 출당이나 탈당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정서가 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적 공감을 이룰 수 있는 혁신적 대안을 마련해 국면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차가워진 국민여론 때문에 탈당한지 1년이 넘은 민형배 의원의 복당 전망도 흐리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범계 의원은 "헌법재판소라는 대한민국 헌법기관이 절차적 하자를 지적했다"며 "지금 당장은 (복당 문제를 논할 시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준한 교수도 "민 의원 복당에 대해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특히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돈 봉투 사태가 터진 지금 시점에선 더 자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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