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들의 슬기로운 직장생활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2023. 4. 2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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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중시하지만 주어진 의무와 업무는 제대로 
회사 내 사람들과 교류 활발하지만 자유의지 강조

(시사저널=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시대가 바뀌면서 이상적인 직장에 대한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각종 조사들에 따르면 이른바 MZ세대(1980~2000년대생)는 직장을 선택할 때 돈보다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면서도 회사 내에서 주어진 의무는 성실히 수행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 강압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며 기업 풍속도를 바꿔나가는 주체로 부상 중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MZ세대가 선호하는 직장 역시 연봉에서 워라밸이 보장되는 곳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워라밸의 필요성을 외치는 한 유통업체 노조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월급보다 워라밸 중시하는 MZ세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MZ세대 8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들어가고 싶은 기업은 '워라밸이 보장되는 기업'(36.6%)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선택의 절대적 기준과도 같았던 '월급(29.6%)'이나 '정년보장(16.3%)'은 2, 3위로 밀렸다.

젊은 직장인들이 말하는 '워라밸'은 단순히 일을 적게 한다거나 편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일과 자신의 삶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느냐'가 좋은 직장 선택 기준의 핵심이었다. 야근이 많거나 자유롭게 휴가를 쓰지 못하는 분위기의 회사는 워라밸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박수연씨(26)는 "정해진 시간인 9시부터 18시까지 근무하고 퇴근 후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워라밸"이라고 정리했다. 6년 차 직장인 이주연씨는 워라밸이 좋은 직장에 대해 "저녁 시간에 터치받지 않고 운동 등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과 일에 영향이 없는 한 장기휴가를 제약 없이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삶을 분리하고자 하는 MZ세대지만, 그렇다고 회사 사람들에게 벽을 치거나 남처럼 지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회사 내에서의 교류활동도 본인 의지에 따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과거 문화와 차이였다. 한 대기업 금융사 고위 임원은 "부하직원에게 '왜 요즘 젊은 직원들은 회사에서 술을 안 마시냐'고 했더니 '자기들끼리는 열심히 마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대기업 과장급 이아무개씨(40)는 "젊은 직원들은 친한 직원들끼리는 잘 지내고 나한테도 먼저 술 사달라는 후배가 많다"며 "중요한 건 강압이나 간섭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라밸이 직장 선택의 주요 기준이 되면서 이제 워라밸이 좋지 않은 회사는 좋은 인재를 채용하기 어렵고, 되레 인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 33세 PD는 "워라밸이 좋은 곳으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주요 기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32세 직장인은 "야근이 없는 회사로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며 "한 투자회사는 출근시간이 이르고 1~2주씩 장기휴가가 불가능해 결국 이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통적으로 고연봉의 안정적 직장으로 여겨져 왔던 금융권에서도 이직할 때 워라밸이 주요 고려 사항이 되고 있다. 시중은행에 종사하는 한 27세 직장인은 "본부에 근무하는 현재는 자유롭게 휴가를 쓰지만, 영업점 근무 당시 휴가로 인한 갈등이 많았다"며 "현재 직장은 휴가 제도 면에서 워라밸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카카오뱅크는 만 3년 근무 시 1개월 안식휴가를 준다고 해서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물가, 치솟는 부동산 가격 등을 감안하면 직장인들에게 월급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럼에도 왜 워라밸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젊은 직장인들은 어차피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을 수 있는 월급 액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들어낼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한 31세 외국계 기업 직장인은 "어차피 편하게 월급 400만원 받으나 매일 야근하고 500만원 받으나 서울에서 집 못 사는 건 똑같다"며 "차라리 덜 일하고 여가라도 더 즐기는 게 낫다"고 말했다. 금융 공기업에 종사하는 32세 직장인 역시 "조금 더 월급 받는다고 해서 자산 확충과 노후 대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현재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경향 짙어져

또 다른 이유는 최근 몇 년 새 주식투자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월급을 올리고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개미투자자가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주식 개인투자자가 1400만 명을 넘어섰다. MZ세대 직장인은 꼭 일확천금을 노리기 위한 투자를 하기보다 월급을 보완하는 수준의 투자를 하고 있다.

워라밸이 돈보다 더 강조되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젊은 직장인이 행복을 미래로 유예하기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30대 영양사는 "돈만 많이 버는 것보다는 가진 것 안에서 현재를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웹툰 콘텐츠 제작사에 근무하는 한 31세 직장인도 "돈을 벌어도 개인 시간이 있어야 그 돈을 쓸 수도 있으니 상대적으로 돈보다는 워라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지현씨(29) 역시 "돈을 더 주면 일을 더 시킨다. 주변을 보면 많이 벌수록 야근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MZ세대 직장인들은 워라밸을 중시하지만 그렇다고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성과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극단적이고 과장된 사례들이 개그 소재로 부각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조직 내에서 부여된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려고 한다는 전언이다. 한 국내 완성차 기업 과장급 연구원은 "나이 어린 직원들은 일에 대한 습득력이 빠르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일은 예전 사람들보다 더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용춘 전경련 CSR팀장은 "MZ세대는 과거처럼 '조직을 위한 희생' 개념이 아닌 자존감으로 일하는 세대이다 보니, 권리도 잘 챙기려고 하지만 회사와의 계약에 따른 자신의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에 대한 의견 표명이 명확한 젊은 직장인은 명확하게 피드백해 주는 상사와 일하고 싶어 했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MZ세대 직장인 1114명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직장 상사를 주제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피드백이 명확한 상사'가 응답률 42%로 1위였다. 한 30대 직장인은 "피드백이 불명확한 상사와 일했을 때는 배우는 게 없었고, 반대의 경우엔 최소 비용으로 업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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