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진도 곽빈도 푹 빠진 그 공··· 스위퍼가 뭐길래
휩쓸다는 뜻의 ‘스위퍼(sweeper)’가 이름 그대로 야구판을 휩쓸고 있다. 미국발 열풍이 이제는 KBO리그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내 최고의 투수 안우진(키움)은 “요즘 투수들은 만나면 스위퍼 이야기만 한다”고 했다. 두산의 영건 곽빈은 “캐치볼 할 때 매일 조금씩 던지면서 연습 중”이라며 “팀내 아직 본격적으로 구사하는 선수는 없지만 다들 스위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스위퍼는 횡슬라이더의 일종이다. 던지는 법은 조금 다르다. 안우진은 “투심 그립을 쥐고 커브 던지듯 던진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슬라이더보다 다소 느리지만 훨씬 더 크게 옆으로 휜다. MLB닷컴에 따르면 지난시즌부터 올시즌 현재까지 메이저리거들이 던진 스위퍼의 평균 구속은 132㎞, 수평 무브먼트는 38.1㎝다. 슬라이더 평균에 비해 구속은 5㎞ 가량 느리지만 2배 이상 휘어진다. 홈플레이트 한쪽 끝에서 바깥쪽 끝을 쓸면서 지나갈 만큼 움직임이 크다고 해서 스위퍼라는 이름이 붙었다.
NC 외국인 선발 에릭 페디는 스위퍼를 주요 무기 중 하나로 구사한다. 미국에서 던지는 법을 배웠고, 올봄 미국 애리조나 NC 전지훈련에서 제대로 가다듬었다.
페디는 자신의 스위퍼를 슬러브라고 부른다. 슬라이더와 커브 사이 어딘가의 궤적이라는 것이다. MLB에도 페디처럼 스위퍼를 슬러브로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슬러브에 비해서도 스위퍼는 낙차가 작고 횡으로 더 크게 휘어진다. MLB 공식통계 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는 이제까지 슬라이더 혹은 커브로 잡히던 스위퍼와 슬러브를 올시즌부터 별도의 구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MLB에서 스위퍼의 대표 주자는 역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다. 스위퍼 구사 비율이 49%로 리그에서 가장 높다. 국내에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 마이크 트라우트를 삼진 잡은 마지막 그 공으로 유명세를 탔다. 평균 구속 134㎞에 수평 무브먼트는 44.45㎝ 에 달하는 오타니의 스위퍼는 피안타율 0.063, 헛스윙 비율(Whiff%) 34%를 기록하고 있다. 타자들이 오타니의 스위퍼를 상대로 100번 방망이를 휘두르면 34번은 헛스윙이라는 뜻이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스가 가장 먼저 스위퍼 바람을 일으켰다. 페디의 스위퍼도 거슬러 올라가면 양키스와 만난다. 페디는 MLB 베테랑 우완 셸비 밀러에게 스위퍼를 배웠다고 했다. 밀러는 지난해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던 양키스에서 스위퍼를 익혔다.
스위퍼가 전혀 새로운 구종은 아니다. 과거에도 사이드암 투수들은 옆으로 크게 휘는 슬라이더를 종종 구사했다. 다르빗슈 유나 코리 클루버처럼 오버핸드나 스리쿼터 투수들 가운데 몇몇도 그런 공을 던졌다. 문제는 높은 팔 각도에서 어떻게 사이드암 같은 수평 무브먼트가 나오는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투구 추적 장비와 기술의 발달로 그 비밀이 풀리고 있다. 실밥을 잘 활용하면 공의 움직임을 더 크게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 ‘SSW(Seam Shifted Wake)’라는 이론으로 규명되고 있고, 어떻게 던져야 스위퍼 같은 움직임이 나오는 지도 정리가 되고 있다. ‘종갓집 장맛’처럼 비전으로 내려오던 것이 하나의 레시피로 리그 전체에 퍼지면서 스위퍼 구사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MLB닷컴에 따르면 지난시즌부터 올시즌 현재까지 스위퍼를 1번이라도 던져본 투수는 99명에 이르고 그 수는 급속도로 늘 것으로 보인다.
야구는 투수와 타자 사이 물고 물리는 경쟁의 연속이다. 스위퍼는 그 최근의 종착점이다. 고도로 발달한 내야 시프트와 결합해 싱커볼러들이 득세하자 타자들은 강력한 어퍼스윙을 장착하고 나왔고, 투수들은 다시 하이패스트볼을 카운터 펀치로 들고 나왔다. 회전수 높은 포심으로 스트라이크존 윗부분을 공략하면서 날카로운 종슬라이더로 타자들의 시선을 흐트러뜨렸다. 타자들이 이같은 높낮이 공략에도 익숙해지려 하자 투수들은 다시 횡적인 움직임에 주목하고 나섰다. 스위퍼처럼 옆으로 크게 휘는 공으로 한층 더 혼란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퍼스윙 열풍이 사그라들면 스위퍼 유행도 잠잠해질까. 메이저리그는 올시즌부터 시프트를 제한하면서 어퍼스윙 견제에 나섰다. 어퍼스윙으로 인한 ‘홈런 아니면 삼진’의 흐름을 되돌려놓겠다는 의도다. 키움 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는 “레벨 스윙 위주인 KBO 리그에서 스위퍼는 효과가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MLB에서 스위퍼 바람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KBO 리그에서도 스위퍼가 신무기로 부상할 수 있을지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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