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막걸리에서 돈 봉투까지

2023. 4. 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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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선거 때만 되면 마을 어르신들의 얼굴이 늘 불콰했다.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 측이 막걸리를 한 상씩 공짜로 대접했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비누, 수건, 수저, 플라스틱 그릇, 찻잔 등 다양한 물건이 선거 때 뿌려졌지만, 그래도 돈 봉투가 최고였다.

한때 자취를 감췄던 돈 봉투가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뿌려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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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선거 때만 되면 마을 어르신들의 얼굴이 늘 불콰했다.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 측이 막걸리를 한 상씩 공짜로 대접했기 때문이다. 또, 부녀자들은 후보자 측이 준 흰색 새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으레 선거 때가 되면 막걸리와 고무신이 뿌려졌다. 유권자들이 “이번엔 뭐 없나”라며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고무신이 30∼50원 할 때인데 검은색보다 흰 고무신이 조금 더 고급이었다.

1960∼70년대엔 막걸리 고무신과 함께 밀가루와 우유 가루도 선거 때 뿌려졌다. 후보자 측의 동 책임자가 주로 밤에 집집이 들고 다니며 나눠줬고, 이를 이용해 밤에 부침개를 해먹던 기억도 생생하다. 끼니 걱정을 했던 농민과 도시 영세민들에게 밀가루 한 포대는 소중한 식량이었다. 이것 외에도 현역 국회의원들은 연초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달력을 돌렸고 집집이 벽에 붙여 놓기도 했다. 지금도 그 국회의원의 이름이 기억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는 막걸리 대신 소주가 인기를 끌었고, 후보자나 의원 이름이 적힌 보자기도 많이 돌아다녔다. 80년대에는 비누, 수건, 수저, 플라스틱 그릇, 찻잔 등 다양한 물건이 선거 때 뿌려졌지만, 그래도 돈 봉투가 최고였다. 봄·가을이면 꽃 구경·단풍 구경을 위한 여행도 이뤄지면서 향응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그러나 1987년 개헌 이후 선거법이 강화되고, 여야의 감시가 치열해지면서 금권 선거는 크게 줄어들었다. 검찰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하는 사례도 많이 나왔다. 금품 대신에 의원들이 집중한 것은 지역구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다. 지금도 국회 예산심의 막바지 단계에 ‘쪽지 예산’이 횡행한다. 정권 차원에서 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뿌려져 집권 여당에 유리한 여론이 조성된다.

한때 자취를 감췄던 돈 봉투가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뿌려진 것으로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국민과 언론의 감시 사각지대인 당내 선거에서 여전히 돈 봉투가 돌아다닌 것이다. 봉투 하나당 많게는 600만 원에서 50만 원까지 등급별로 나뉘었다. 그동안 암암리에 이뤄져 온 것이 고스란히 녹음되면서 들통이 났다. 선거 민주주의를 30년 이상 퇴보시킨 반민주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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