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 확인했어야"…2심서 전세대출 사기피해자 승소

기사내용 요약
대출모집인이 이중대출 후 대여금 편취
금융사가 소송…1심 "피해자가 갚아야"
2심 "주의의무 해태…피해자 책임 없어"

[서울=뉴시스]신귀혜 기자 = 명의를 도용당해 전세대출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상대로 금융사가 낸 대출금 반환 소송에서 항소심 법원이 1심 판단을 뒤집고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금융사가 대출 과정에서 본인 확인, 사실관계 확인 등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면 피해자를 상대로 대출금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4-3부(부장판사 권혁중·이재영·김경란)는 오릭스캐피탈코리아(오릭스)가 A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 19일 1심과 달리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9년 8월 임대차보증금 2억2000만원으로 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지불했다.

이후 A씨는 대출모집업무를 수행하는 B사의 직원 C씨 등에게 전세대출 서류 작성을 위임하면서 자신의 인감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예금통장 사본, 본인 명의 휴대전화 등을 교부했다. C씨는 D금융사에서 전세자금을 대출받았고, 해당 대출은 정상적으로 실행됐다.

그런데 C씨 등은 A씨로부터 받은 인감증명서 등을 이용해 A씨 몰래 오릭스로부터 2억900만원을 대출 받아 편취했다. 이들은 이런 수법으로 오릭스로부터 16회에 걸쳐 34억원을, 다른 금융사에서 119억여원을 대출 받았다.

C씨 등은 사기,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기소돼 2021년 징역 2~3년 형을 선고 받았고 이 판결이 확정됐다.

2020년 오릭스는 A씨를 상대로 대출금과 이자를 반환하라며 소송을 냈다. C씨 등이 A씨로부터 대리권을 넘겨받았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취지다.

지난해 10월 1심은 오릭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C씨 등이 제출한 서류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다고 봤다.

또 C씨가 A씨 명의의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A씨임을 자처하면서 허위로 대출 의사를 확인해준 것이라 하더라도 오릭스로서는 이를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오릭스가 금융기관으로서 준수해야 할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취지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A씨가 C씨 등에게 교부한 전화번호로 전화해 본인 여부 등에 관해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질문만 하고 이에 대해 '네, 아니오' 정도의 답변만 들은 뒤 본인 확인 절차를 마쳤다"고 했다.

또 "이 사건 대출계약은 임차인이 임대차보증금을 일시불로 지불한 뒤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하는 형식이었다"며 "매우 이례적인 형태였음에도 추가적인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서류심사만으로 대출을 승인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원고가 이 사건 대출계약 체결 과정에서 D금융사에 이중 채권양도 통지가 이뤄지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기만 했더라도 이중대출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A씨가 오릭스에 대출금을 변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marim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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