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다’…전세사기 ‘공범’ 된 공인중개사들
인천시, 사기 의심 중개사 104곳 특별점검
전세사기 사건에서 공인중개사들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객관적·중립적 지위를 갖고 임대인과 임차인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공인중개사가 임대인과 짜고 전세사기의 주범·공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
24일 인천시는 이른바 ‘인천 건축왕’ 남모씨(61)가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공인중개사를 고용하고, 이 사실을 숨긴 채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으로 보고 5월말까지 전세사기 의심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대해 특별점검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천에 개업 중인 공인중개사는 6743곳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해 2건 이상의 전세사기가 발생한 공인중개사 104곳의 명단을 통보, 인천시는 이곳을 전세사기 의심 공인중개사무소로 보고 있다.
지난해 허위 매물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인천의 공인중개사는 모두 453건이다. 이 중 등록취소가 6건, 업무정지 53건, 과태료 331건, 경고·시정 63건이다. 2021년에도 등록취소 8건, 업무정지 51건, 과태료 96건 등 155건의 행정처분이 진행됐다.
그러나 2021년과 2022년 등 2년간 인천에서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국토교통부는 공인중개사가 낀 부동산거래질서 교란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공인중개사 자격 취소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로 제한했지만, 이를 강화 해 집행유예 등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자격을 취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인중개사는 전세사기 사건의 공범·주범이 되고 있다.
인천 건축왕 남씨는 2021년부터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대출이자가 연체돼 인천과 경기 등에 소유한 2700가구 중 1523가구가 경매에 넘어갔다. 남씨는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161명으로부터 이 사실을 숨긴 채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체결해 125억원을 속여 뺏은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남씨 일당 61명 중 9명은 공인중개사이다. 남씨에게 고용된 공인중개사들은 우선 주택의 실소유자가 남씨라는 사실을 숨겼다. 또한 이들은 문제가 터지면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다는 이행각서까지 작성해 주는 방법으로 세입자들을 안심시켰다.
특히 남씨는 공인중개사들에게 주택을 명의신탁했고, 공인중개사들은 서로 다른 공인중개사 명의 부동산을 중개해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남씨는 전세계약을 많이 체결한 공인중개사에게는 성과금까지 줬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관계자는 “남씨와 남씨 일당에게 고용된 공인중개사들이 물건에 문제가 없고, 문제가 생기면 보증선다고 하는데, 어느 세입자가 계약을 안 하겠냐”고 말했다.
남씨 일당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은 남씨에게 고용돼 세입자에게 불리한 계약을 체결한 공인중개사 2명을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지난 3월 구속기소 했다.
인천지검 부천지청도 지난 19일 적발한 전세자금 73억원을 편취한 전세자금 작업대출 사기 조직 8명 중 공인중개사가 2명 끼여 있는 것을 적발했다. 이들 공인중개사들은 부동산 중개행위도 없이 대출에 필요한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 줘 전세자금 대출을 받도록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전세사기에 공인중개사들이 깊숙이 개입된 것은 맞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공인중개사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철 기자 terry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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