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은 거들뿐···‘한일 626홈런’ 이승엽 감독의 ‘현실야구론’

안승호 기자 2023. 4. 2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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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두산 감독. 정지윤 선임기자



잠실 KT-두산전이 일요일 낮 경기로 열린 지난 23일. 경기 전 이승엽 두산 감독이 기자들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 전날 홈런을 친 안재석 얘기가 나왔다.

안재석의 타법에 대해 감독이 조언한 대목이었다. 이 감독은 “타격코치들이 다 하는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 있겠냐”며 기술적인 얘기에 대한 진단은 더 이어가지 않았다.

사실, 이 감독과 대화에서는 이미 익숙해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개막 이후 3주를 보내면서 ‘감독 이승엽’의 스타일도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 이 감독은 선수생활 동안 타자의 업적으로는 어떤 인물 뒤에도 설 일이 없을 만큼 뾰족한 기록을 남겼지만, 타자들 지도 영역은 타격코치들에게 대부분 맡기고 있다. 안재석 사례처럼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을지 모르지만, 미디어를 통해서는 관련 내용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는 편이다. 분야별 코치 개개인의 위상과 책임감을 일상에서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짐작할 수 있다.

이 감독 스스로 ‘이상적인 팀’을 바라보는 시선도 또한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 안재석과 관련해 이어진 대화에서도 일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나온다. 안재석은 지난 22일 KT전에서 4-0이던 7회 솔로홈런을 때렸다.

이 감독은 경기 중 1점 더 달아나는 안재석의 홈런이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안재석의 이날 타격을 놓고는 홈런이란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잠실구장에서 살기 위해서는 강한 타구와 빠른 타구가 필요하다. 붕 띄워서 잠실구장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건 어렵다.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자주 만드는 타격이 본인에게 훨씬 더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홈런을 때린 장면을 놓고는 “홈런을 노리고 스윙을 했다면 외야 뜬공이 나왔을 것이다. 선수가 잘 이해해주고 있다”고도 했다.

선수 이승엽은 한일통산 626홈런을 때린 ‘홈런의 역사’였다. 홈런으로 소속팀의 역사, 대표팀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도 숱했다. 그러나 감독 이승엽의 야구에서 홈런은 ‘후순위’에 있다.

두산은 개막 이후 팀홈런 15개로 SSG(16개)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홈런이 잘 터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쳐줘야 할 선수들이 홈런을 쳐주고 있다. 홈런이 많이 나오면 물론 좋다. 작전을 낼 필요도 없다. 하지만 늘 그렇게 홈런이 나올 수 없는 게 바로 야구”라고 했다.

이 감독이 정규시즌 개막 이후 사령탑의 옷을 입고 가장 자주 꺼낸 얘기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이 감독은 “야구는 누가 잘 하느냐의 게임이라기보다는, ‘누가 실수를 덜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게임이다. 그에 따라 팀의 득실점과 분위기도 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감독이 지난 주말 시리즈를 보면서 가장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이른바 하지 않아도 될 시점에서 팀 에너지를 소모한 장면이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21일 잠실 KT전에서 10-1로 앞서던 8회 5점을 내준 과정과 결과였다. 두산은 8회 들어 KT 선두타자로 나온 앤서니 알포드 3루수 실책으로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몸에 맞는 볼 2개와 볼넷 1개로 자멸하며 5실점을 했다. 넉넉한 리드 덕에 승리는 지켰지만, 계산 밖의 투수까지 써야 했다. 이 감독은 “그런 과정을 줄인다면 우리가 투수진 소모 줄이면서 그다음을 위한 기회도 더 많이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개막 이후 “우리는 지금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라는 얘기를 몇 차례 했다. 당초 4월 목표는 팀승률 5할. 현장 성적표는 11승1무7패(0.611). 일단 목표를 초과한 행보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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