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어린이병원 성공률 3%…무너지는 소아진료 인프라
‘돈 안 되는’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 심각…전공의 지원율 15.9% 불과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한국은 지구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 데이비드 콜만 교수는 우리나라가 처한 저출생 위기에 대해 이같이 경고했다. 2022년 한국의 합계출산율(0.78명)은 세계에서 '꼴찌' 수준일 뿐 아니라 인구 감소 속도 또한 가장 빠른 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저출생 위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만 280조원에 이르지만, 곤두박질하는 출산율 그래프는 좀처럼 턴어라운드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저출생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인구구조 변화로 고령층은 점점 늘어나는 반면, 일할 사람은 계속 줄어들면서 저성장 고착화로 인해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대로 가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30년 내에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노년인구의 부양비가 높아지면서 세대 갈등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비혼(非婚) 증가와 출산 공백은 가족 해체를 가속화해 지역 소멸을 불러온다.
저출생 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이 5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직속기관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정책과제 및 추진방향'은 근거 없는 추진과제의 나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출생 직격타로 영·유아 및 소아를 위한 사회 인프라가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소아청소년과(소청과) 폐과 위기에 대해 정부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확대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이들을 위한 인프라의 부재는 다시 아이를 낳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6년째 자리 못 잡은 달빛어린이병원 정책 확대
지방 소도시에 사는 만 1세 유아가 토요일 한밤중에 고열을 동반한 구토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가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까. 우선 동네 소아과는 문을 닫은 시간이다. 약국도 마찬가지다. 인근 대도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의 진료를 고려해 보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응급실 환경과 대기 시간 등을 떠올리면 엄두가 안 난다. 한밤중 어린 자녀를 데리고 응급실을 가본 적이 있는 부모들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응급실에 간 상황이라면 어떨까. 경기도 동탄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박아무개씨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신생아를 데리고 집에서 40분 걸리는 응급실에 갔는데, 소아병동이 분리가 안 돼 있고 대기자가 많아 진료를 마치기까지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며 "그 후 절대로 응급실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맘카페에 수시로 올라오는 엄마들의 글에서도 상황이 짐작된다. "아이가 손목을 다쳐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수술이 필요하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고대구로병원을 찾았는데 소아정형외과 담당의가 부재중이라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인근 대학병원에 다 전화를 걸어 소아정형외과 담당의가 있는지 확인해 찾아갔다." "원주세브란스 응급실 소아과 의사는 수·목·토·일에만 있답니다. 기억하세요!" 소아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과 요일을 공유하는 게 일상이 돼버린 엄마들은 "출산을 그토록 장려하면서 갈 수 있는 소아과가 없다니…"라며 한숨을 쉰다.
소청과는 저출생 탓에 소아 환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수익 감소로 의대에서 제1 '기피 학과'가 된 지 오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말 기준 전국 소청과 병·의원은 3247곳으로 집계됐다. 개·폐업 현황을 보면 지난 5년간 소청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이보다 많은 662곳이 폐업했다. 2023년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레지던트) 모집률을 보면 소청과는 정원 207명에 한참 못 미치는 33명(15.9%)만 지원했다. 소청과 전문의가 갈수록 줄어들면서 부모들은 아이가 아플 때 진료를 받지 못해 애가 탄다. 인구 천만 도시 서울에서도 소아과 진료를 위해 새벽부터 대기표를 받는 '오픈런' 현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소아 환자의 진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곳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달빛어린이병원은 밤늦게 아이가 아파도 찾을 수 있도록 야간과 주말에도 문을 여는 소청과 병원이다. 2014년부터 보건복지부가 공모를 통해 선정·운영하고 있으며, 만 18세 미만 환자를 대상으로 평일엔 오후 11시, 휴일엔 오후 6시까지 진료를 본다. 그러나 전국 226개 시·군·구에서 운영되는 달빛어린이병원은 현재 36곳에 불과하다. 전남, 경북, 광주, 울산, 세종 등 1곳도 운영되지 않는 지역마저 있다. 그마저도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드물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는데도 정부는 개선책을 찾기보다 갯수를 늘리겠다는 결정을 했다.
"소아 의료 인프라 무너져…대통령 결단 필요"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서울 시내 4곳의 달빛어린이병원 가운데 취지에 맞게 운용되는 곳은 1곳 정도에 불과하다. A병원의 경우 평일 진료시간이 오후 5시30분까지여서 평일에는 야간 진료를 받을 수 없고 토·일요일에는 오후 6시까지 진료가 가능하다. 복지부의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지침'상 주말 이틀만 운영해도 인정은 되지만, 달빛어린이병원이 아닌 소청과 중에서도 주말에 운영하는 곳들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차별점이 없다. B병원의 경우 소청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달빛어린이병원 운영이 가능하도록 한 지침 또한 소아진료 사각지대 해소라는 당초 운영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다가 중단한 병·의원도 상당수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추가로 동참하는 병원이 몇이나 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초 정부의 구상은 2015년까지 달빛어린이병원을 30곳까지 늘리는 것이었지만 2018년까지 20곳을 운영하는 데 그쳤다. 실패한 정책을 재탕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현장 의견을 수렴하고 자문도 받으면서 관련 기관과 부서들이 협의하고 있다. 논의가 충분이 이뤄진 후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을 묻자 "예산과 수가(진료비) 인상 2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건강보험료 인상과 직결된 수가 인상이나 예산 마련 둘 다 민감한 부분이어서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달빛어린이병원은 소아 환자들에겐 안심이지만, 병원으로선 재정 부담이 크다. 소청과는 의료수가 체계상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다. 소아는 진찰 외 추가적인 시술이나 처치가 없는 경우가 많아 진찰료로만 수익을 내는 셈이다.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0년간 1만7000원가량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 중이라는 게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 입장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을 운영하면 진료 1건당 1만~1만3000원의 수가를 추가로 받는다. 달빛약국의 경우 환자 1명당 2000원대의 야간수당을 받는데, 밤 늦은 시간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소아가 많지 않아 사실상 문을 열어놓을 유인이 되지 못한다.
소청과 경영난은 필수 의료의 낮은 의료수가라는 해묵은 과제와 관련이 깊다. 최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지속적인 수입 감소 등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폐과' 선언을 하자 복지부가 긴급대책반을 꾸려 대처하겠다고 나섰다. 저출생 등에 따른 소청과 위기가 계속되면서 정부가 지난 2월 소청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보상 강화와 소아응급 진료기능 강화 등을 담은 소아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내놓았지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간담회 참석까지 거부하며 '보이콧'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서 한 소아과 병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은 "소아 진료 인프라는 이미 무너졌다. 소청과 전문의들이 자신의 전공을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그 전공에 대한 지원자도 더 이상 없다면 그 분야가 무너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병원은 환자를 위해 필요하다. 건강보험료 내는 주인들이 아픈데 치료를 못 받고 있는 현실이다. 소아과뿐 아니라 필수 의료 체계가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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