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의 기회 붙잡아 정상에 … 노력의 ‘언약’ 마침내 이뤄지다[주철환의 음악동네]
올 상반기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가수로 블랙핑크를 뺄 수 없다. 3월에 미국 백악관 측이 레이디 가가와의 합동 공연을 제안했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까지 소란스러웠다. 4월엔 세계 최대 음악 축제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23’에서 아시아 최초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랐다.
헤드라인은 익숙해도 헤드라이너는 처음 듣는다는 사람이 많다. 국립국어원은 대체할 우리말로 ‘대표 출연자’를 선정했다. 대표 출연자는 대개 마지막에 등장한다. 90년대 초반에 김건모와 신승훈이 한 무대에 서게 되면 연출자가 신경을 써야 했다. 순서뿐 아니라 분량에도 기획사 간 무척 민감했던 기억이 난다. 방송가에 이런 일화도 있다. 지역 축제에서 왕년의 톱 가수와 당대의 인기가수가 맞붙었다(?). 후배 측이 양보해서 마지막은 선배가 공연하기로 합의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엄청난 팬을 몰고 다니는 스타의 공연이 끝나자 객석이 일시에 썰렁해진 것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혼자 외로울 수밖에 없어’(임지훈 ‘사랑의 썰물’) 추억의 헤드라이너는 관객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시대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며 속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몇 번이고 되뇌었으리라.
오늘의 탐구 대상은 가수 양지은이다. 다른 동네도 비슷하겠지만 음악동네 역시 노력만으로 어떤 자리에 오르기란 쉽지 않다. ‘나의 노력’은 ‘너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계한 가수 현미는 원래 무용수였지만 주변에 노래도 잘한다는 게 이미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출연하기로 했던 가수가 제때 나타나지 않자 대타로 무대에 올라 존재감을 확실히 뽐내게 된다. 주현미는 노래 잘하는 약사로 소문나 있었는데 트로트메들리 ‘쌍쌍파티’를 녹음하기로 했던 조미미(1947∼2012)가 무슨 까닭인지 나타나지 않아 얼떨결에 대타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 그게 마침 어마어마한 히트를 기록해서 마침내 주현미의 시대를 열게 된다. 음대 재학 중이던 20대 조영남은 운명의 그날 그 타임에 예정돼 있던 당대 최고의 가수 차중락(1942∼1968)이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세시봉 무대에 서게 됐고 마침 그걸 본 PD의 번갯불 섭외로 ‘쇼쇼쇼’(TBC)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마침’이 ‘마침내’가 되고 ‘대타’가 ‘대표’가 되는 스토리는 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도 모른다. 판소리 전공의 제주도 효녀 정도로만 알려졌던 양지은도 처음엔 ‘미스 트롯2’(TV조선) 준결승 문턱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거기서 멈췄다면 그냥 한국 판소리 보존협회 서귀포지부장으로 계속 남을 뻔했다. 그러나 때마침 몰아닥친 학폭 논란으로 진달래가 하차하며 그 자리에 대타로 들어가게 되고 기회를 기적으로 바꾸며 마침내 진의 자리까지 오르고 만다.
히트곡 없는 오디션 가수는 존재감을 유지하기 어렵다. 양지은의 오리지널 대표곡은 ‘그 강을 건너지 마오’다. 이 가사의 뿌리는 대중예술의 시조새 ‘공무도하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악보는 남아 있지 않아도 사실 이 노래는 K-팝의 원조라 우겨볼 만하다. 고조선의 유행가로 당시 중국에도 널리 퍼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 이상은도 같은 제목으로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다. 가사는 보존돼 있으니 거기에 멜로디를 입히고 싶었으리라.
양지은의 ‘공무도하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와도 맥락이 닿는다. 외연을 넓히면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사랑의 언약을 품고 떠난다면 마침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다. ‘가려거든 가시려거든 이 언약 가져가시오’(양지은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제야 알겠다. 마침표를 여러 개 찍으면 말없음표가 된다는 사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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