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민 영화감독 “사회적 관계서 원칙만 고수할 땐 부조리… 관객이 함께 느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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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의 고고학'은 한 여성이 8년간의 만남과 4년간의 헤어짐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고고학에 빗댄다.
고고학자 영실(옥자연)은 현재 우도(강태영)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자꾸 과거 인식(기윤)과의 연애에서 남겨진 '마음의 유물들'이 발에 차인다.
영실은 그런 인식과 8년간 만나다 헤어졌지만 그 뒤에도 지지부진한 관계를 이어간다.
유약한 인식은 영실을 자기 뜻대로 소유하려 하고, 단단해 보였던 영실은 오히려 휘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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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63분 독립 영화
“관객 수에는 현혹되지 않아”
영화 ‘사랑의 고고학’은 한 여성이 8년간의 만남과 4년간의 헤어짐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고고학에 빗댄다. 고고학자 영실(옥자연)은 현재 우도(강태영)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자꾸 과거 인식(기윤)과의 연애에서 남겨진 ‘마음의 유물들’이 발에 차인다.
인식은 영실의 이전 연애에 집착해 그녀를 헤픈 사람으로 몰았고, 짧은 원피스를 입으면 화를 냈다. 그녀의 창작물을 훔치기도 했다. 영실은 그런 인식과 8년간 만나다 헤어졌지만 그 뒤에도 지지부진한 관계를 이어간다. ‘유약한’ 인식을 지켜주기 위해. ‘뜨거운 감정이 지나가도 남아 있기’라는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10일 서울 아트나인 이수에 만난 이완민 감독은 “굉장한 원칙주의자가 관계에서 그 원칙을 고수할 때 생기는 문제점을 살펴보고 싶었다”며 “오히려 원칙을 지킬 때 벌어지는 부조리함을 목도하고 관객이 이를 간접 체험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인식이 “제가 당신의 전부를 가질 수 있을까요”라고 고백하자 영실이 “물이 되어 같이 흘러요”라고 답하는 대목에서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유약한 인식은 영실을 자기 뜻대로 소유하려 하고, 단단해 보였던 영실은 오히려 휘둘린다. “너 자유로운 영혼이지?”라는 인식의 힐난은 폭력적이다. 그런데 그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로맨틱한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감독은 “관계에서 폭력적인 사람들이 좋을 때와 나쁠 때를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그 경계에 놓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영실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영실은 과거를 자책하지도, 인식을 가해자로 추궁하지도 않는다. 그저 관계가 남긴 지층을 고요하게 들여다보고 의미를 인정할 뿐이다. 결국 영실은 후련하게 고백한다. “지겨워졌어.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는 거.”
영화는 인물을 세워두고 자연스럽게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홍상수 영화와 닮았다. 실제 이 감독은 홍상수의 ‘낮과 밤’ ‘클레어의 카메라’에 스태프로 참여했었다. 이 감독은 “홍 감독님 영화엔 어떤 것에 연출자의 시선이 갔고, 어떤 정서 작용이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며 “내 영화는 그것보단 인물 실험에 가깝다”고 말했다.
러닝타임 163분에 이르는 독립영화를 만든 그는 상업영화엔 뜻이 없다고 했다. “투자를 받되 연출, 편집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하겠지만 기존 제약 하에선 의미가 없겠죠. 이미 그런 고민은 지나갔어요. 관객 수엔 현혹되지 않으려 합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고고학과 연애에 ‘삽질’이란 공통점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럼 고고학자와 영화감독의 공통점은 뭘까. 이 감독에 따르면 평소 후줄근한 차림으로 다니는 생활노동자란 점이 비슷하다. “고고학자들이 발굴 현장에서 땅을 파고 있으면, 구경하던 아주머니가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고생한다’고 한대요. 저도 영화 현장에서 그런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하하.”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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