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적대가 잘한 일? 국정원 연구소 전문가도 “한국은 통상국가” 지적

김예진 2023. 4. 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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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전략연구원 소속 전문가
“우리와 다른 진영의 일원이라도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는 신중해야”

신냉전 대결 전선 속에서도 진영을 초월한 실용외교를 펴야한다는 분석이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소에서 나와 이목을 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흥안보실의 이수형 연구원은 지난 19일자로 발간된 이슈브리프 보고서에서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체제적 경쟁으로부터 파생되는 전략적 난제를 해결하고 한국이 대외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객관적 현실을 반영한 전략적 나침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의 객관적 현실은 분단국가, 동맹국가, 반도국가, 세계적 통상국가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의 객관적 현실을 반영한 종합적 국가전략을 마련해 분야별 세부 전략을 그려나가야 체제적 경쟁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중국, 러시아가 연대한 권위주의 세력 간의 대결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결 전선이 20세기 냉전때와는 엄연히 다르다. 냉전시기 체제 우월성 대결, 이념 대결, 선악 구도와 달리 실은 각국이 철저히 자국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이 연구원은 분석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을 주축으로 전개되는 체제적 경쟁이 지난 냉전 시대처럼 탄탄한 진영 구도를 형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역 주요 국가들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한 국제지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패권국 미국이나 새 강자 중국 모두 확실한 지도력을 가진 국가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두 강대국이 경쟁 과정에서 우군 확보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국면 속에서 오히려 지역적 중추 국가의 영향력이 보다 중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질서 재편 과정에서 지역 중추 국가들의 ‘몸값’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논리다. 

그는 “예를 들면 인도와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 지역적 중추국가들은 체제적 경쟁 구도에서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경도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국익을 챙기는 실용외교를 적극 전개하고 있다”며 “이들의 실용외교는 체제적 경쟁에 따른 진영 구도를 느슨하게 만들면서 강대국 중심의 지정학 정치의 진영구도를 희석하는 완충역할도 해내고 있다”고 했다. 두 강대국이 우군 확보에 매진하느라 진영 구도가 공고화되는 양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중추국가가 자신의 국익을 챙기는 실용외교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 역설적 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21세기 국제환경에서 펼쳐지는 체제 경쟁은 외형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가치 경쟁 양상을 보이나 내면에는 자국 우선주의 논리에 기초한 국익 챙기기라는 실용정신이 움직인다”며 “이데올로기적 가치의 절대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자국 우선주의에 바탕을 둔 국익 창출 여부가 국가 관계 형성의 잣대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분단을 관리해야 하는 국가, 미국과 동맹인 국가,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전략적 이익 교차하는 반도 국가, 다양한 국가들과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인 경제교류를 해야 하는 세계적 통상국가”라며 “평화와 안보에 대한 한국의 역량과 의지가 부족하면 한반도는 언제든 주변국가들의 권력투쟁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과제와 관련, “한국 외교가 동맹 미국과 흐름을 같이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나, 문제는 어느 선까지 참여, 밀착하느냐”라고 했다. 또 중국에 대해서는 한반도 평화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수이자 경제력에 기반한 강대국화가 진행 중인 만큼, 국익 관점에서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며 “국가 정체성과 체제, 가치규범이 다른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느 영역에서, 어느 강도와 깊이로 관계 발전을 추진할지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 과제”라고 했다.

그는 “미국 주도 진영에 속하더라도 우리 상황에 따라 실용외교에 입각한 대외정책을 전개할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실용외교에 입각, 여건에 따라 명분과 실리 간 시소게임이 진행될 수 있는 전략적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설사 우리와 다른 진영의 일원이라도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는 대외정책 추진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국정원 산하 국가전략연구원 소속 전문가들이 다양한 이슈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는 것으로 연구원 전체를 대표하는 공식 입장은 아니다. 이 보고서는 중국, 러시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로이터통신 인터뷰 직전에 나왔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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