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컷으로 순수의 마법을 만들어 내는 직업 [강홍민의 굿잡]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등 200여 편의동화를 창작한 덴마크 출신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의 동화는 100년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어린이들에게 삶의 지혜, 희로애락을 알려주는 동화는 동심을 풍부하게,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더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다. 최근 들어 동화는 IP산업의 발달로 하나의 스토리를 넘어 캐릭터, 공연, 게임 등 다양한 산업군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로 인해 16컷으로 동심(童心)을 담아내는 동화작가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혐오스러운 곤충 ‘거미’를 사랑스러운 ‘딩동거미’로 탈바꿈해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은 신성희 동화작가를 만나 직업의 세계를 들어봤다.
그동안 어떤 동화책들을 내셨나요.
“제가 창작한 책들이 몇 권 안 돼 모두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2014년 작가로서 처음 낸 ‘괴물이 나타났다’부터 ‘안녕하세요’, ‘뛰뛰빵빵’, ‘까칠한 꼬꼬 할아버지’, 그리고 ‘딩동거미’, ‘딩동거미와 개미’가 있어요. ‘딩동거미와 개미’는 가장 최근인 작년에 출간했는데, ‘딩동거미’ 2편이에요.”
그럼 대표작이 ‘딩동거미’시리즈겠군요.
“맞아요. 2017년에 ‘딩동거미’를 출간했는데, 처음에는 반응이 크게 없다가 몇 년 뒤 매스컴에 나오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어요.”
“혐오스런 곤충 ‘거미’를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바꾼 동화 ‘딩동거미’, 웃기고 막무가내 캐릭터로 아이들에게 사랑 받아···지난해 2편인 ‘딩동거미와 개미’ 출간”
‘딩동거미’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요.
“제 책 중엔 가장 많이 팔렸어요.(웃음) 아마 12쇄 정도 찍었을 거예요. 유명 작가님들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저에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준 책이죠.”
‘딩동거미’의 인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주인공인 딩동거미가 아주 말썽꾸러기 캐릭터인데, 그게 아이들에게 재미있었나 봐요.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이 책을 만들 때도 작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캐릭터는 동화책에 많았어요. 그래서 그냥 웃기고 막무가내인 캐릭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탄생한 친구가 딩동거미예요.(웃음) 다른 책들은 마지막이 훈훈한데, 딩동거미는 그렇지도 않아요. 아마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나 봐요. 초안에서는 더 강한 캐릭터였는데 많이 순화됐죠.(웃음)”
유독 동화책에는 동물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데, 작가님은 보통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세요.
“전 주변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딩동거미를 쓰기 전에도 거미, 개미 등 곤충들을 수시로 관찰했어요. 그 친구들을 관찰하면서 행동이나 특징들을 찾아 캐릭터화 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죠. 요즘 관심 있게 보는 건 잡초예요. 주변에 잡초를 키우는 분이 있는데, 신기하더라고요. 주변에 있는 것들을 관심 있게 보면서 영감을 얻죠.”
주변을 유심히 보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겠군요.
“그렇죠. 사실 거미는 모기같이 우리에게 해로운 것들을 잡아주는 이로운 곤충인데 징그럽다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좀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입혀주자는 생각에 여러 번의 스케치 과정을 거쳐 빨간 팬티를 입은 딩동거미로 탄생했죠.(웃음)”
“동화책 제작 과정, 책의 소재가 될 아이디어 기록-스토리 구성-썸네일 작업-글·그림 수정 후 스케치-더미북 완성-출판사 투고 과정 거쳐”
동화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궁금해요.
“말씀드린 것처럼 그림의 소재가 되는 것들을 관찰하고,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돼요. 그렇게 기록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거죠. 그 다음 스토리를 16장면으로 나눠 손바닥 만한 크기로 러프하게 그리는 썸네일을 작업합니다. 그 작업으로 여러 번 글과 그림을 수정하게 되고, 이후 본 스케치를 하게 돼죠. 책 형태의 더미북을 만드는 것까지가 샘플링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처음 입문하는 작가의 경우, 바로 출간을 할 순 없을 텐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더미북을 만들고 나면 출판사에 투고를 하죠. 운이 좋으면 출판사와 미팅을 통해 책을 출간할 수도 있는데, 처음에는 거절 메일을 받는 게 일상이에요.”
작가님도 거절 메일을 받아 보셨나요.
“저도 많이 받았죠. 거절 메일을 보내주는 출판사 중에서는 편집자님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 담겨 있기도 해요. 아무래도 처음 하는 분들은 부족함 투성이라 편집자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죠. 보통은 거절 메일조차 못 받아 볼 때가 많지만요.(웃음)”
동화책 제작 과정에서 16장면으로 나눈다고 하셨는데, 정해져 있는 건가요.
“규정돼 있진 않아요. 페이지 수가 적거나 많은 책들도 많죠. 근데 동화책(그림책)의 주요 소비층이 아이들이잖아요. 페이지가 너무 작으면 스토리 전개가 어렵고, 너무 많으면 집중력이 떨어져요. 아이들이 가장 집중할 수 있는 분량이 16컷이에요.”
“나만의 창작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에서 동화작가로 도전, 글·그림 좋아하는 이들에겐 제격인 직업···최근 출판사, 대학 등 작가 양성 기관 늘어나”
동화작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다른 작가님들은 어릴 적부터 작가의 꿈을 꾸면서 준비한 분들이 많은데, 전 너무나 현실적인 이유였어요. 디자이너로 회사도 다니고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문득 저만의 이름으로 된 결과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직업적 공허함과 과연 디자이너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동화책을 접한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제격인 직업이었죠.”
동화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많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죠. 근데 요즘 동화작가, 그림책 작가를 양성하는 기관이 꽤 많아졌어요. 출판사나 관련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대학이나 대학원에서도 관련 학과가 생겨나고 있어요.”
동화작가가 되려면 그림이나 글쓰기 전공을 한 분들이 유리할까요.
“그렇지도 않아요. 저도 그림을 전공했지만 그림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리고 작가 양성 기관이 워낙 다양해서 그림이나 글을 처음 접해보는 분들에게 맞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보통 6개월 과정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동안 만든 책을 발표해요. 발표회 때는 출판사 관계자들도 참석해요. 내용이 좋으면 바로 계약도 할 수 있어요. 저 역시 상상마당 볼로냐 워크숍을 통해 첫 책이 운 좋게 출간된 케이스죠.”
동화(그림)책 시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제가 시장 전반을 예측할 순 없지만 몇 년 전부터 동화작가 지망생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인재들이 동화책 시장으로 유입된다는 점은 아주 반가운 일이죠. 지원자들이 늘어나면서 좋은 작품들이 많아지고, 소재·주재도 다양해져 독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까요. 반면 작가의 시점으로 보면 경쟁자가 늘어나고, 경제악화와 맞물려 출판시장이 안 좋아지는 것도 현실이죠. 특히 종이나 자재가격이 상승돼 책 가격이 상승한 점도 책 소비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어요.”
신생 작가의 유입은 늘어났지만 시장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으로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사실 유명 작가님들을 제외하면 작가 수입으로만 생활하기가 어려운 구조예요. 보통 한 권을 펴내려면 최소 4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1년에 3권 이상 내기 어려워요. 계약금이 편당 300만원이면 1년에 900만원이니까 작가 일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 게 현실이죠. 저도 그렇지만 작가들 중에는 투잡으로 하는 분들이 많아요.”
작가님은 기존 디자인 일을 계속하고 있으신 거네요.
“네. 디자인(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창작책도 만들고 있어요. 그리고 저같이 그림 전공자들은 출판사를 통해 글을 받아 그림 작업만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 경우에 수입은 어떻게 나뉘나요.
“보통 작가 인세가 10%라고 하면, 글/그림 5%씩 나누는 게 일반적이에요. 글 작가가 유명할 경우 조율하기도 하고, 계약에 따라 달라져요.”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고, 본인 스스로 일의 범위 정할 수 있어···그림 실력도 중요하지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이들에게 공감 얻어야 좋은 동화작가 될 수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의 매력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장점은 너무 많아요.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는 점, 작업의 양과 시간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책이 출간되면 도서관이나 학교 강연으로 어린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쁨도 있죠.”
동화작가가 갖춰야할 조건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가장 중요한 건 동화책(그림책)을 좋아해야 해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하고, 주요 독자인 어린이들의 공감을 얻으면 진짜 좋은 동화책이 나오리라 생각해요. 어린이들의 공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아닐까 싶어요.”
많은 분들이 동화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동화작가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솔직히 여러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비전이 밝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반면에 하나의 콘텐츠가 다방면으로 활용될 가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캐릭터 사업이나 애니메이션, 공연(연극, 뮤지컬 등) 등으로 활용될 수 있고, 작가는 강연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큰 비전을 꿈꾸고 시작한 작가들은 쉽게 그만두기도 합니다. 한 권 한 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기쁨을 가지고 작업한다면 쉽게 지치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 그림책이 좋아 평생 만들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작가의. 비전은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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