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미 상원 회의록에 이순신 장군 이름이 왜?
와일리 의원이 ‘일본 이긴 나라’로 언급
[주간경향] 1943년 미국 상원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호명됐다는 사실이 최근 미국 의회 회의록에서 확인됐다. 이해 4월 22일 미국 상원에서 알렉산더 와일리(Alexander Wiley) 위스콘신주 상원의원이 “It was in 1592 that the Korean Admiral Yi Soon-Sin invented ironclad warships and annihilated the Japanese invading fleet”(1592년에 한국의 이순신 제독은 철갑 전함을 발명했고, 일본의 침략 함대를 전멸시켰다)라고 연설한 기록이 회의록에 실려 있다. 회의록에서 충무공의 이름을 찾아낸 박종평 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상원에서 언급됐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면서 “당시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공격을 당한 후 일본을 꺾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일본을 물리친 충무공의 이름을 불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상원에서는 이때 중국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는 의안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이해 3월 31일에 조지 오브라이언(George O’Brien) 의원(미시간주)이 하원에 한국임시정부 승인안을 제출한 데 이어, 4월 22일에는 와일리 의원 역시 상원에 동일한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안이 상원 외교위원회에 상정되자 와일리 의원은 이 안의 통과를 요청하는 연설을 했다. 와일리 상원의원은 “한국의 2300만 백성이 자유를 위해 일어날 기회를 기대하고 있다”며 “세계에서 일본인을 물리쳐 이긴 나라는 조선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여러 번 전쟁이 있었는데, 그 승리자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그는 또 이순신 이후 “조선이 300년 동안을 무사히 지냈다”고 밝혔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을 물리쳐 나라를 구했고, 350년 뒤 다시 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을 때는 미국에서 영웅으로 등장했다. 또 한 번 나라를 구하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박종평 교수는 “와일리 의원의 언급은 외국의 국회에서 이순신 장군이 언급된 최초의 사례”라면서 “그동안 실제로 와일리 의원이 상원에서 그런 연설을 했는지 불분명했는데, 기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 회의록에서 이순신 장군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게 된 데에는 1943년 당시 발행된 미국 하와이 교포들의 한글신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민보’ 6월 2일자에는 ‘미국 국회의원 와일리씨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문제에 대한 연설내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독립기념관 인터넷 사이트에서 국민보 기록을 검색하면 나온다. 국민보의 기사는 “북미합중국 국회 상의원 와일리씨가 4월 22일에 상의원석에서 대한민국 문제에 대하여 연설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문제 의안(議案)을 제출하였는데, 미국 국회록에 등재(登載)된 원문을 보아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로 시작한다. 당시 동포들의 관심사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안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약 40일 전에 있었던 와일리 상원의원의 연설을 회의록에서 찾아내 번역한 것이다. 이 연설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의장 각하여! 승전을 앞에 두고 계획할 때는 우리의 공동적국인 일본과 삼십여 년을 싸운 나라와 연맹을 하는 것이 좋을 줄로 압니다. 그 나라는 곧 대한민국입니다. 2300만 대한사람은 일본을 극도로 미워하는 원수입니다. 그 나라의 임시정부는 중국 중경(重慶)에 있습니다. 그곳이 조선독립운동의 총수부(總帥部)이며, 그곳이 중앙이 되어 모든 용맹스럽고 활동력 있는 한인들이 자유를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려 합니다.”
이 연설의 중간 부분에 와일리 의원은 일본을 이긴 유일한 나라로 조선을 언급하고, 조선의 장수 이름으로 이순신 제독을 호명했다. 와일리 상원의원은 1884년 위스콘신주 치페와폴스에서 태어났다. 변호사 자격을 얻은 후 고향에서 지방검사로 재직했다. 1939년 처음으로 공화당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때 상원에서 중경 임시정부 승인안을 제출하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와일리 의원은 “우리가 마땅히 한국을 승인해 우리와 함께 우리의 원수인 일본을 쳐 이기도록 싸울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 국무부 극동국의 ‘한국 독립에 대한 대담 비망록’ 서류에 따르면 와일리 의원은 연설 전날 극동국에 전화를 걸어 임시정부 승인에 대한 국무부의 입장을 물었다고 한다. 당시 와일리 의원이 어떻게 조선의 역사와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접하게 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재미 교포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나서면서 이런 자료를 와일리 의원 등에게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에 의하면 상·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임시정부 승인 촉구안은 통과됐다. 상·하 양원은 합동회의를 개최해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다”는 합동결의안을 미국 국무부에 제출했다. 미국 정부는 그러나 결국 임시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았다. 관련 논문을 보면 미국은 임시정부 승인이 소련을 자극할까봐 우려했다. 전쟁 후를 염두에 둔 열강들의 서로 다른 입장이 임시정부의 승인을 가로막았다는 역사적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와일리 의원은 1963년까지 네 번 당선돼 상원에서 활동했고, 1967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쉽게도 그의 이순신 장군 언급에도 미국이 중경의 임시정부를 승인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미국인들에게 그리고 한국 교포 사회에 이순신 장군의 기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의회의 회의록을 검색해보면, 충무공 이순신은 1949년 4월 22일 제헌의회에서 처음으로 거명됐다. 국회 본회의에서 조국현 의원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표충사가 여수 시내 상단에 있습니다. 그 어른이 돌아가신 뒤에 그 주민이 전 국민이 제사를 지내서 오늘날까지 왜적을 물리친 공로자라는 것을 영구히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연설했다. 우리나라에서 제헌의회가 1948년 개원됐지만, 의회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언급은 미국이 6년이나 더 빨랐다. 박종평 교수는 “독립운동가들이 미국 의원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설명했을 것인데, 이들에게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 일본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적이 있던 이순신 장군을 내세웠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이순신 장군의 기상이 우리나라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나섰던 미국 의원들을 감동시켰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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