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 둘과 이사하기

칼럼니스트 이은 2023. 4. 2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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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이사 만렙 미국 엄마의 또 한 번의 이사이야기

미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와 같은 꼼꼼한 포장 이사 서비스는 기대할 수 없고 전문적인 이사 업체도 많지 않다. 또한 이사 업체가 있더라도 보통 한인이 밀집돼 있는 지역에 한정된 경우도 많고 인건비가 비싼 미국의 특성상 예산을 초과하는 일이 허다하다. 게다가 이사를 돕는 업체에서 오는 일꾼도 전문적인 경우는 거의 없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대행 업체를 통해 오는 경우가 많은데다 시간당 임금을 받는 방식이 대부분이라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때때로 분통이 터질 듯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내가 혼자 들 수 있는 책상을 장정 두 사람이 맞들고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이기도 하고 좁은 입구에서 비스듬하게 든 후 대각선으로 지나면 아무 문제 없이 통과할 식탁을 두고 한참이나 들이기 불가능하다고 우기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결국 남편과 나는 두어 번 이런 경험을 한 뒤로는 아예 아주 무거워서 도움이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시간과 상관없이 그 물건을 다 옮기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방식으로 사람을 고용해보기도 하고 (이 경우 놀랍도록 일하는 속도는 놀랍도록 증가한다) 이웃분들에게 사례를 하고 남편과 이웃 분들이 짐을 옮기거나 작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큰 아이와 타블렛 영상에 아이를 잠시 맡기기 혼자 들기 불가능한 것들만 잠깐씩 내가 함께 들면서 짐을 옮기기도 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 결과적으로 짐이 많으면 너무 고생이 심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스트에 가깝게 살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이 완전히 자의적인 것이면 괜찮았을텐데 나도 모르게 언젠가 떠날 곳이라는 떠도는 마음가짐에 의한 타의적 필요에 의한 것들이라 지금도 신혼 이후부터 내내 짝을 맞춰 써본 적이 없는 몇개 안되는 그릇들을 보면 가끔씩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이삿짐을 싸면서 옷을 솎아내는 중. 상자에 넣을 옷과 기증할 옷으로 구분한다. ⓒ이은

슬프게도 나는 이사가 힘들다는 미국에서 이사를 6번이나 했다. 같은 동네나 같은 도시안에서의 이사도 꽤 힘든 편인데 땅이 넓은 미국의 특성상 다른 주(state)로 이주하게 되면 이사 난이도는 급증한다. 그리고 나의 미국에서의 6번의 이사중 4번의 이사는 주 경계를 넘나드는 긴 여정의 이사였다. 그러다 보니 큰 아이는 한 지역에서 1년이상 살아본 적이 최근의 경험 뿐 그 전에는 한 지역에서 6개월, 길어 봤자 1년을 살고 계속 이사를 다녔었다. 이사를 그렇게 자주하게 된 것은 아빠 엄마의 불안정한 상황 때문이었다. 아빠 엄마가 둘 다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데다가 그 뒤로는 연구 프로젝트나 박사 후 연구 과정 포지션이 바뀌면서 자주 이사를 다녔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남편이 조교수로 임용되면서 처음으로 같은 지역에 2년째 머물게 되었을 때는 아이가 몹시 놀라워했다. 계속 같은 지역에서 살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이에게는 신기한 일이 돼 버렸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학령 연령이 된 큰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적응하고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이 곳 펜실베니아의 작은 도시를 이제 곧 떠나게 됐다. 어디로 가게 될지 그리고 왜 또다시 이사할 결심을 굳혔는지는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동안의 이사에서 늘 그랬듯이 중요한 서류들은 작은 가방에 따로 빼놓는다. 신분증과 아이들 관련된 중요 서류 들이 대부분이다. 이사할 때 챙기고 소지하고 있을 것들이다. 다음으로는 근처 중고용품 매장에 판매하거나 기관들에 기증할 만한 물건들을 미리 처분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부가 둘 다 공부하는 사람들이라 책 짐이 제일 많은데 책들은 무게가 많이 나가므로 제일 작은 상자 안에 담거나 표지에 자국이 생기지 않게 제일 위와 아래에 두꺼운 종이나 판자 조각을 덧 대어준 상태로 노끈 같은 것으로 묶어준다. 코팅이 벗겨진 냄비나 이가 나간 그릇들은 잘 쌓아서 버리고 너무 낡거나 1년 이상 한번도 입지 않은 옷들도 과감하게 처분한다. 이사의 과정은 버리고 비우고 나누는 반복적인 과정이지만 매번 새롭게 비우고 나눌 것이 생기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이사 과정 중에 제일 신경써야 할 것은 사실 아이들인데 아직 어리다보니 혹시라도 불안해 할 수 있어서 이사 전후로는 아이들과 같이 자려고 하는 편이다. 꼭 안아주고 이사 할 곳의 재미있는 점 그리고 특이한 점을 미리 알려준다. 이사 간 곳에서 아이가 가보고 싶은 곳도 지도를 보면서 미리 골라 놓기도 한다. 어른도 아이도 힘든 이사지만 아무쪼록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이동해서 더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나갔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그래도 일단은 이삿짐 싸고 옮길 일에 벌써 피로도가 오르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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