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농촌마을에 모인 청년들…“우리 함께 농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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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아파트가 즐비한 세종 신도시를 지나 한참을 가다 보면 만나는 시골길.
"꼭 농촌에 와서 농사를 지으라는 게 아니에요. 농촌에서 요리도 하고, 교육도 하고, 디자인도 하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많은 청년들이 농업의 희망을 발견하길 바라는 거죠. 꼭 그 동네에 집을 두지 않아도, 거기서 놀고 먹고 일하는 것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이 동네도 더 북적거리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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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아파트가 즐비한 세종 신도시를 지나 한참을 가다 보면 만나는 시골길. 연서면 신대2리 마을회관을 지나 불당골로 들어서자 멀리 뾰족지붕의 갈색 벽돌집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농땡이 사업단’의 임국화(38)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왜 농땡이죠?”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묻는 말에 임씨는 씩 웃으며 “즐겁게 농땡이 치러 농촌에 와서, 농촌이 땡(당)기는 이유도 찾고, 농촌에서 땡 잡는 이야기도 들어보라는 의미”라고 답했다.
임씨가 신대리에 들어온 건 5년 전인 2018년이다. 대전에서 세종시 보람동으로 거처를 옮긴 뒤 가까운 농촌에 별장을 지을 생각으로 찾은 곳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유학 시절부터 꿈꾸던 전원생활이었다. 음식점 체인 사업을 해 번 돈이 밑천이 됐다. 농촌에 생활공간을 만든 뒤 세종시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았고, 별장용으로 지은 집에 떡 공방을 열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청년 농부들의 소개로 청년 농업인 단체에도 참여하게 됐다. 청년들과 만나며 임씨는 농업과 농촌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렇게 신대리에서 작당 모의가 시작됐다.
김민석(28)씨는 6년째 전동면 미곡리에서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농대를 졸업하고 2018년 부모님이 사는 미곡리로 와 자리를 잡았다. 정부의 청년 창업농 지원을 받아 산 노지 3천평(약 1만㎡)에서 고추 농사를 시작했다. 첫해는 운이 좋아 제법 괜찮았지만, 다음 3년은 죽을 쒔다. 초보 농사꾼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동안 ‘신대리 아지트’는 큰 힘이 됐다. 임씨를 비롯한 다른 청년들과 ‘놀고 먹고’ 하면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
신대리 아지트에 모인 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다른 청년과 학생들에게 농업과 농촌의 매력을 알릴까’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했다. 고민 끝에 지역 농산물로 만드는 요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직접 학교로 찾아가 수업도 했다. 아지트 마당에선 달고나 만들기, 전통놀이 체험을 했다. 예약을 받아 아지트에서 파인다이닝(격식을 갖춘 식사가 나오는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떡 공방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임씨와 프랑스 요리학교를 졸업한 셰프 임바울(31)씨가 요리 분야를 담당하고, 유아교육을 전공한 뒤 딸기 농사를 짓는 임수연(30)씨가 교육 지원을, 조경을 전공하고 이끼를 키우는 유태욱(28)씨와 서예를 전공하고 다육 농사를 준비하는 하현서(24)씨가 전반적인 디자인을 맡았다. 마을 어르신들을 보조강사로 초빙해 전통놀이 프로그램 진행을 부탁하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과 청년들이 함께 요리하며 소통하는 수업도 했다.
청년들은 최근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농땡이 사업단’이란 이름으로 공모해 선정됐다. 더 많은 청년이 신대리를 찾아와 농촌의 매력을 경험하고 농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겠다는 게 이들의 포부다. 세종시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도 행안부에서 현장 실사를 나왔을 때 풍물놀이를 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업의 핵심 타깃은 가까운 고려대·홍익대 세종캠퍼스 학생들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지역에서 기른 농산물을 직접 수확해 하루 세끼를 함께 만들어 먹는 1박2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 방학 기간에는 농촌 한달살이도 운영할 계획이다 . 다양한 요리법과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도록 아지트에 있는 해썹 (HACCP ) 시설을 청년들에게 빌려주고 , 사업화 지원도 할 참이다 . 무엇보다 신대리에 온 사람들이 ‘농땡이 사업단 ’의 놀고 먹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 매력을 느끼길 바란다고 그들은 말한다 .
“꼭 농촌에 와서 농사를 지으라는 게 아니에요. 농촌에서 요리도 하고, 교육도 하고, 디자인도 하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많은 청년들이 농업의 희망을 발견하길 바라는 거죠. 꼭 그 동네에 집을 두지 않아도, 거기서 놀고 먹고 일하는 것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이 동네도 더 북적거리길 바라요.”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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