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신뢰’의 균열

판결에 대한 불신 및 검사, 변호사와 법무부 공직자의 각종 업무에 나타나는 여러 부적절한 법률 집행에 대한 반감 현상을 아울러 ‘사법불신’이라고 부른다. 이런 통념에 더욱 구체성을 보탠 사건이 최근 발생하면서 법조계 불신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동안 국가폭력 공안사건 및 형사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가 화제가 된 적은 있어도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변호사의 불출석으로 학교폭력 피해 의뢰인 측이 패소한 사례가 집중 조명된 적은 없었다. 후속 보도를 통해 변호사가 계약한 수임 사건에 대해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또 다른 사례들이 드러나면서 변호사 신뢰에 대한 균열을 직접적으로 불렀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전세계약을 했더라도 사기로 드러나 보증금을 손해 본 사건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이번에 인천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집단 현상으로 벌어지며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살기 힘든 강원도를 떠나 장래를 모색했던 한 청년이 외지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전 재산을 떼인 억울함이 제도적 구제로 이어지지 않는 분노와 좌절이 그 죽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잇따른 피해자 사망사건에 정부는 뒤늦게 경매 연기 등 개입에 나섰으나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 완결까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전세보증금 사기 파문은 임대인은 물론 공인중개사에 대한 불신을 불렀다. 임차인이 법원에 신청해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내는 임차권등기명령 급증세가 대변한다.

삶과 밀접한 부동산, 민사 사건 관련 계약에 의한 이행을 신뢰할 수 없게 된 일련의 국민 전체적 직간접 경험은 사회 불확실성을 야기하며 정부 불신을 가속화할 수 있다. 합리성에 기반한 계약의 신뢰가 무너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은 개인과 개인 간 믿음에 금을 내는 것은 물론 사회적, 공적 정책과 제도영역으로 번지며 불신을 부르기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적 여건과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는 지경에 있다.

신뢰는 일단 깨지고 나면 배신감까지 부르는 등 서구와 달리 회복이 매우 더딘 정서적 특성이 있기에 이번 사태 여파를 더 주시하게 된다.

박미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