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청춘] ⑫ "쓰레기 주우며 살 거야"…불편한가게 대표 김주은씨
"아직 우리 사회는 실패에 인색…두드리면 문은 열린다고 얘기하고 싶어"
[※ 편집자 주 = 좁아진 취업문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청년들의 고민이 깊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되기 십상이라는 위기의식도 팽배합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모험을 택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현장서 답을 구하는 이들입니다. 연합뉴스는 열정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꿈을 실현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총 20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송고합니다.]
(청주=연합뉴스) 천경환 기자 = "엄마, 나 쓰레기 주우면서 살래요."
가족을 실망시키면 안된다는 책임감에 부모님 속 한번 썩인 적 없는 'K-장녀' 김주은(30)씨가 틀을 깨고 나온 순간이다.
충북 청주시 운천동에서 제로웨이스트(쓰레기 없애기) 상점 '불편한 가게'를 운영하는 김씨는 대나무 칫솔, 천연 수세미 등과 같은 친환경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동시에 양말목과 같은 산업폐기물로 공예품을 만드는 체험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청주에서 자라 화학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김씨가 처음부터 환경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안정적인 회사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부모님 기대에 부응해 별다른 고민 없이 전공을 살려 직장을 선택했다.
공기청정기 필터를 만드는 곳에서 2년여 동안 연구원으로 일한 그는 초고속 승진에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그의 인생이 가족들과 남해에서 휴가를 보낸 뒤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불과 몇 년 전과 달리 바다에 물고기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청주에선 하루가 멀다고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데, 깨끗한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환경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대기질이 나빠야 회사 실적이 좋아지는 현실 간의 괴리감도 컸다"며 "부모님 반대가 있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져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했다.
2021년 7월 충북대학교 인근에서 6평 남짓한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차리며 험난한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대학가라는 지리적 특성상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20대 청년층이 가게를 찾았지만, 예전 회사 다닐 때와 비교하면 수입은 턱없이 부족했다.
수많은 친환경 제품 중 어떤 게 좋은지 직접 써보며 판매할 물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히 따져보는 선별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친환경 제품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타지역에 있는 제조사를 직접 찾아가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날이 허다했다.
몸은 고됐지만 이전에 느끼지 못한 행복과 성취감을 느끼며 정진했다.
소통의 장을 넓혀 환경 감수성을 자극해야 한다는 소신은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플리마켓, 지자체 주관 문화축제에 빠짐없이 참석해 그곳에서 만난 환경 활동가들과 인맥을 쌓았다"며 "일반 시민들과는 샴푸바, 양말목 가방 만들기 등 각종 공방 체험을 매개로 환경 문제를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돈을 좇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김씨가 고안해낸 체험 프로그램이 이색적이고 의미 있는 활동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학교, 공공기관에서 수업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제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요가 늘어나 지금의 자리로 가게를 옮겨 친한 환경 활동가에게 상점 운영을 맡긴 뒤 교육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도전하는 청년들을 위한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 같다"며 "막상 도전해보니 문을 두드리면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잘하는지 한번 탐색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w@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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