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20%대로 추락…尹의 위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한일문제 서두르고 미국 도청에 서툴게 대응…친정체제 구축했지만 ‘뺄셈정치’로 인해 선거연합 깨져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20%대를 기록했다. 한국갤럽 4월 둘째 주(11~13일)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27%, 부정평가는 65%였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건 지난해 11월 3주 차 조사 이후 처음이다.
여론조사의 모든 지표는 지금 윤 대통령이 위기에 빠져 있다고 알리고 있다. 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2030세대·중도층·무당층에서 지지율은 모두 10%대로 추락했다. 보수의 텃밭으로 통하는 대구·경북(TK)에서조차 부정평가(53%)가 긍정평가(44%)를 앞섰다.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에서도 부정평가(48%)와 긍정평가(47%)가 비등한 상황이다.
추세를 보면 최근 민심이 얼마나 빠르게 악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 1월 첫째 주(3~5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7%, 부정평가는 54%였다. 5개월여 만에 긍정평가는 10%포인트 빠지고, 부정평가는 11%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이 기간 20대(18~29세)와 30대 지지율은 22%→14%, 28%→13%로 각각 추락했다. 중도층 지지율도 26%에서 18%로 하락했다. 반면 TK와 부산·울산·경남(PK)의 부정평가는 31%→53%, 45%→55%로 치솟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세대·지역·이념 뛰어넘어 총체적 불신"
전문가들의 평가도 냉정하다. "윤 정부가 세대·지역·이념을 뛰어넘어 '총체적 불신'을 받는 형국"(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모든 지표가 위기를 알리는데 여권은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장관 몇 명 바뀐다고 해결될 위기가 아니다. '구조적 위기'다"(이준한 인천대 교수), "정책 난맥상이 반복되면서 국민 마음이 뒤집어졌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여론은 실제 표심으로도 이어졌다. 총선을 1년 앞두고 치러진 4·5 재보선에서 여권은 쓰디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지 기반을 넓히면 이기고 좁히면 진다. 정치에서 불변의 진리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에 따르면 지지율에서 긍정평가가 35%를 밑돌고 부정평가가 55%를 넘으면 '정권 심판 구도'가 선거를 지배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를 넘어 '콘크리트 비토층' 55%와 '중도 비토층' 65%라는 두 가지 악재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지난 한 달 내내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내년 총선까지 아직 1년 정도 남았지만, 여권 입장에선 비상등이 켜진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 민심이라는 바다를 성나게 한 것일까. 여의도 정치권에 분석과 진단은 넘친다. 독선과 불통,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 등 윤석열 대통령의 '마이웨이' 스타일과 태도가 문제라는 지적과 주 69시간 근무 논란이나 외교안보 라인의 인사 교체 등 정책·인사 난맥상이 반복되는 것이 민심 이탈을 불러왔다는 분석 등이 주로 제기된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무리한 당 장악 시도나 인사 논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김건희 여사의 광폭 행보 등도 많이 거론된다. 시사저널은 용산(대통령실)과 여의도(국민의힘) 내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같은 문제가 계속 지적되는데 유사한 양상이 반복된다는 것은 무언가 구조적 이유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반등의 고비 때마다 악재가 반복되며 번번이 지지율이 주저앉는 그 이유, 수면 아래 잠복한 진짜 원인을 찾아봤다.
집권세력 안에서 사라진 견제와 자정 기능
"최근 여권의 위기는 역설적이다. 윤 대통령이 원하던 '일사불란한 친정체제' 구축이란 목표를 드디어 지난 전당대회를 끝으로 다 이뤘는데, 그 순간부터 위기가 본격 시작됐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는 한시적·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국민의힘에서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핵심 관계자의 진단이다. 이 핵심 관계자는 지금의 위기를 '역설'이라는 열쇳말로 풀어냈다. 당·정·대(대통령실) 전체의 친윤 일색이라는 일사불란함이 획일적인 국정운영체제 구축으로, 획일적 체제가 내부의 견제·자정 기능 상실로, 사라진 견제·자정 기능이 다양성 상실로 이어져 내부의 쓴소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런 관점으로 보면, 여권의 잇따른 설화나 연이은 정책 혼선 등이 왜 계속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당·정·대에서는 그야말로 사고가 줄을 이었다. "전광훈 목사 우파 천하통일"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4·3은 격 낮은 기념일"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 최고위원을 시작으로, 쌀 소비 감소를 '밥 한 공기 비우기 운동'으로 해결하자는 조수진 최고위원, "제주 4·3은 김일성의 지시였다"는 태영호 최고위원까지 그야말로 집권여당에서는 설화가 쏟아졌다.
사실 이상한 일이다. 설화가 나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면 설화의 주인공은 물론 그 주변은 일정 기간만큼은 언행을 조심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계속 사고가 터졌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김기현 당대표가 정말 영(令)이 서지 않기 때문일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결이 다른 진단이 나왔다.
앞서 언급한 국민의힘 관계자의 설명이다. "획일적이고, 내부 견제·자정 기능이 사라지고, 다양성이 사라지면 결국 '같은 색'만 남는다. 같은 색끼리는 생각도 같고, 언어도 같다. 지금 당과 대통령실의 공기가 같다. 서로 전혀 이질적인 게 없다. 그러니 국민 눈높이에 전혀 안 맞는 발언과 정책이 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논의 과정은 더 빨라지고 자연스러워졌다. 이것도 문제인데,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더 이상 듣지 않으니 참모들은 직언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러니 국민 보기엔 뜨악한 메시지와 정책들이 그대로 나가고, 그 문제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국민 눈높이와 전혀 다른 처방전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미국이 악의를 가지고 (도청을)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발언이나 '69시간제 논란이 홍보 부족 때문'이라는 인식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되는 것은 여권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고'가 아닐 수 있다. 내부에서 회의하거나 논의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던 발언이나 정책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기현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 내내 연합과 포용, 탕평의 당직 인선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인선 결과는 친윤 일색으로 연·포·탕은 없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오히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문제와 관련해 자신을 공개 비판한 홍준표 대구시장을 상임고문에서 해촉하면서 불통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에 여권에서는 김 대표와 당 지도부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박성민 컨설턴트는 비슷한 맥락의 지적을 제기했다. 그는 "지금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여권 지도부는 모두 위기의식이 없다. 위기를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오류는 고칠 수 있어도 한계는 못 고친다. 한계는 세계관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당·정·대 대대적 인적 개편 필요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역설이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성공방정식을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10가지 중 9가지가 달라도 정권교체라는 한 가지 생각만 같으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당의 혁신으로 중도와 합리적 진보로 지지 기반을 확장해서 이들을 대선 승리의 핵심 주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여권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이 10가지 중 9가지가 같아도 하나만 다르면 적으로 몰아붙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실제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무 개입' 논란과 '수직적 당·대(대통령실) 관계' 등 숱한 비판을 감수하고 경쟁자들을 중앙정치에서 사실상 몰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각각 2030세대와 합리적 보수, 중도층에 소구력이 있는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이 차례로 찍혀 나갔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일찍이 홍준표 전 의원은 대구시장으로 스스로 피신했다. 선거 전략에 밝은 국민의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련의 이런 흐름에 대해 "윤 대통령이 '보수·중도 연합'을 스스로 해체하면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의 검찰 출신 무더기 공천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여권 내부의 원심력을 키우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현재 여권의 위기 원인을 좀 더 근본적인 데서 찾는 이도 늘고 있다. 바로 국정운영 능력 자체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연이어 발생하는 정책 난맥상과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의 메시지 혼선 등을 보면 국면 전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4년의 임기를 제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라도 당·정·대 전체에 대대적인 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일본 강제징용 해법 제시와 노동시간 유연화 개편 작업 등은 최소한 보수 지지층에는 먹혀 들어갈 수 있는 의제들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급하게 의제만 던지고 여론 조성과 소통 등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자신들의 선의만 앞세우고 국민에게 윽박지르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국정운영이라는 것은 기획, 여론조사와 같은 사전 조사 등 정지 작업은 물론 입안, 시행, 여론 조성, 보완 조정 등이 포함된 종합예술이다. 치밀한 사전 준비 작업에서 계속 구멍이 난다는 것은 국정운영의 가장 기초인 ABC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왜 해외 순방 때마다 지지율 추락할까
정무와 홍보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여권에서 정책통으로 통하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통상 내치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외치로 국정을 이끈다. 실제 보통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가면 지지율이 오른다. 국가대표로 나가는 만큼 국민도 응원하고, 언론의 주목도도 확 올라가는 만큼 지지율이 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년여간 대통령이 순방만 가면 지지율이 추락했다. 대통령실은 계속 지엽적인 문제들을 키우며 대통령에 대한 주목도를 떨어뜨렸다. 영부인 이슈도 순방 때마다 반복된다. 대통령실이 해외 순방 성과 등 자신들이 원하는 이슈로 상황을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실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청 의혹에 대한 대응도 아마추어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교과서적으로 모범답안이 있는데 "미국은 악의가 없고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메시지가 덜컥 나간 탓에 정부의 입지를 스스로 좁혔다는 지적이다. 그 후 국민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고위 당국자의 고압적인 태도와 짜증뿐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위기 관리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모습이 반복되는 것은 국정운영에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 의제 자체에 대한 대국민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준한 교수도 비슷한 맥락의 지적을 내놨다. 이 교수는 "미국 순방을 앞두고 기대감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여론이 상당한 게 냉정한 바닥 민심"이라면서 "이런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윤 대통령과 여권이 현재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특히 "지금 여권의 위기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다"면서 "정치 신인이라 굳건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갖지 못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뺄셈정치'와 '마이웨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중도층과 2030세대가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하는데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큰 상황이다. 그래서 장관 몇 명 바꾸고 인적 개편을 한다고 해서 지금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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