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현대사회 문제 해결할 K건축 시대 열어야"[인터뷰]

김희준 기자 최서윤 기자 2023. 4. 2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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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아직도 괜찮은 건물이 있으면 대부분 외국에서 설계한 겁니다. 재능과 자질이 없는 게 아니라 여건이 안 되는 거죠.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일본은 8번을 받고 아프리카와 중국도 받았는데 우린 풍토가 안 돼 있습니다. 우리 건축의 세계화가 필요합니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뉴스1> 과의 인터뷰에서 협회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로 한국 건축과 설계 흐름을 다시 잇고 세계에 알릴 필요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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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선출 이래 2021년 연임…지난해 개업건축사 의무 가입 법제화 '성과'
"복지·환경 등 정책으로만 풀 수 없는 문제, 답은 건축에 있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담=김희준 건설부동산부 부장, 정리=최서윤 기자. 2023.4.17/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김희준 최서윤 기자 = "우리나라는 아직도 괜찮은 건물이 있으면 대부분 외국에서 설계한 겁니다. 재능과 자질이 없는 게 아니라 여건이 안 되는 거죠.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일본은 8번을 받고 아프리카와 중국도 받았는데 우린 풍토가 안 돼 있습니다. 우리 건축의 세계화가 필요합니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협회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로 한국 건축과 설계 흐름을 다시 잇고 세계에 알릴 필요성을 꼽았다.

고(故) 김수근·김중업 그리고 생존한 김종성 건축가까지 전후 '1세대'를 굳히는가 싶었지만, 건축과 설계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지 못했다. 고도성장 속 건설산업 발전만 부르짖어온 게 현실이다.

석 회장은 "지금 우리시대 건축사가 할 일은 선조들의 유구한 문화를 계승·발전시켜 물려주는 것"이라며 "그래야 우리 건축사들이 앞으로 자부심 갖고 일할 수 있다. 우리 세대 큰 족적 남긴 선배들 외엔 얘기할 게 없는데, 이걸 회복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건축의 세계화가 필요한 건 단지 명성 때문만이 아니다. 석 회장은 "K건축을 이루는 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플리츠커상을 받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프리츠커상의 수상 기준은 바로 건축을 통해 사회현상에 대한 건축적 대안을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즉, 빈곤과 소외, 자연환경 파괴, 고독사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책 외에도 건축이 답을 제시할 수 있고 그런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석 회장은 "건물을 흔히 사유재라고 생각하지만 건축물은 공공재"라며 "그렇기에 건축이 사회현상에 답을 제시해야 하고, 건축의 세계화가 이뤄지면 국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청년주거 문제의 경우도 집이 작다면 설계를 통해 5평 밖에 안 되는 집이라도 어떻게 하면 더 쓰기 편하고 살기 좋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아파트 외에도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원룸 등 설계에 대해 정말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석 회장은 2018년 3년 임기 대한건축사협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한차례 연임, 6년차 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에는 개업 건축사 의무 가입 법제화라는 '쾌거'를 이뤘다. 앞서 2017년 국제건축연맹(UIA·Union Internationale des Architectes) 서울 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UIA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세계 유일 건축 관련 국제기구로, 124개국이 가입해 있다. 우리나라도 1963년에 가입, 현재 대한건축사협회와 한국건축가협회, 대한건축학회 3개 단체가 한국건축단체연합(FIKA)을 구성해 활동 중이다. 총회는 3년마다 개최된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 8층 사무실에서 1시간 8분간 이뤄졌다. 다음은 석 회장과의 일문일답.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4.17/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2017 UIA 서울 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장…"전국 다니며 이견 조율"

-2017년 UIA 서울 세계건축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됐습니다. 단체 간 이견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조율하고 단합을 이끌어내셨나요?

▶UIA를 위해 FIKA가 만들어졌지만 건축이란 게 속성이 워낙 다양합니다. 3개 단체가 지향하는 목표도 다르고 관점도 다른데, 이걸 통합·조정하고 소통하는 힘이 많이 약했어요. 그런 이유로 원래 UIA 대회 조직위원장은 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각 단체가 조직위원장을 하나씩 두고 공동위원장을 하고 있었죠. 대회가 가까워지는데 우리는 '건축사'와 '건축가' 명칭 문제를 두고도 해묵은 갈등을 했습니다. 결국 세계 '건축' 대회로 명칭을 정했는데, 대회를 '남의 잔치', '남 일'로 보는 시선이 많았죠. 조직위원장 제의가 왔을 때 망설였어요. 결국 위원장 되고 전국을 열심히 다니며 다 끌어모았습니다. 이해보다 명분으로 설득했습니다. 건축사의 위상이나 위치가 아직까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건 우리 잘못이니 이번 계기로 노력하자고 했죠. 결과는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건축사와 건축가 명칭 논란이 분분합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용어 구분이 있나요?

▶법적으로 모든 설계는 건축사가 해야 되는데, 매스컴에서 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건축가란 용어를 쓰다 보니 건축가란 표현이 일반화됐어요. 나라마다 제도가 조금씩 다르지만 건축사와 건축가를 구별하진 않습니다. 우리나라만 특수한 건데, 한마디로 얘기하면 건축사로서 대외적 홍보를 못한 결과이기도 하죠. 이제야말로 구분이 없어질 때가 됐고 서서히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협회 의무 가입이 법제화돼서 이제 유일한 법정단체가 됐으니 그런 사소한 논란을 따지지 않고 단체들 간 잘 소통하면서 가야죠.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 법제화를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마침내 실현됐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반대하는 명분은 (의무 가입이) '규제'라는 데 있었습니다. 건축은 무엇보다 개성과 독창성, 창의성이 존중돼야 하는데 왜 협회 테두리 안에 묶으려 하는 거냐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의무가입을 추진한 건 건축사의 창의성과 개성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공공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공적 역할을 하려면 일정한 규제 안에 있어야 되거든요. 예를 들어 안전 문제 생기고 하면 대부분 우리 협회 회원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통제와 교육, 관리의 밖에 있는 겁니다. 이제는 협회 안에서 건축사로서의 윤리나 도덕성, 공인의식을 제대로 세워야만 국민의 안전이 보장됩니다. 그런 명분으로 법 개정을 할 수 있던 것이고, 지금 건축계는 물론 정부와 국회도 협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떨어진 건축 위상, 낮은 처우·부실 설계로 이어져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나.

▶건축사협회가 단순한 직능단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실 건축사들도 자신의 일이 공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습니다. 잘못된 것이죠. 사회도 마찬가지인데요. 건축사를 그냥 설계하는 전문가집단으로 봅니다. 한참 성장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오로지 경제적 가치로서만 건축을 바라봐온 거죠. 집의 경제적 가치만 보다 보니, 건축이 우리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간과한 거죠. 건축은 문화 수준, 국격과도 연관되는 건데요. 당장 외국에 관광을 가도 건축물을 보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건축의 가치와 위치를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고, 그런 노력을 진행해야 합니다. 건축사의 긍지와 자부심을 회복해야죠.

-협회 차원에서 회원들과 회원사에 얘기하고 있는 건 어떤 부분인지 궁금합니다.

▶3단계 장기적 플랜을 세우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성'인데요. 지금 건축이 제대로 인정 못 받고 사회와 국민으로부터 소외된 건 우리 스스로 때문이고, 선배 건축사들이 건축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 협의해야죠. 건축하는 모든 사람이 협회에 모이고 창의성은 보장하되 공공성과 국민 생명에 직결되는 안전 문제는 우리가 책임지고 선도하는 역할을 하자고 합니다. 이렇게 건축사가 스스로 위치를 찾는 '회복' 단계를 거치고,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도약'의 단계로 가자는 거죠. 지난해 제주도에서 대한민국건축사대회를 열고 몇 가지 정책과제도 제시했습니다. 회원만 7000여명, 총 1만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건축계 대통합이고요, 둘째는 건축사가 단순히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 건축정책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건축사도 국가정책 비전과 어젠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세 번째 과제가 바로 K건축입니다.

-K건축이라는 건, 우리 건축이 다른 나라보다 퀄리티가 높고 독창적이라 수출한다는 건데요. 실제 역량은 어떤 수준일까요?

▶기본 능력은 있는데 시스템과 동기부여가 안 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젊은 세대 건축사들은 굉장히 독창적이고 개성있는 설계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첨단 디자인 기법을 많이 접한 후배도 많고요. 사실 건설은 세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건축은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는데 이제 우리가 해야 된다는 것이죠. 건축의 세계화가 이뤄지면 국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 상도 받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하는데요. 수상 기준이 바로 사회현상에 대한 답을 만드는 겁니다. 그냥 멋지고 아름다워서 되는 게 아니라, 사회현상에 건축이 미치는 영향이 중요합니다. 복지, 환경, 교육 생각해보세요. 건축과 관계 없는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공공의 일 한다는 책임의식·자긍심 회복해야

-건축사의 위상이나 사회적 역할과 관련해 처우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설계 대가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우리 건축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대가의 문제와 설계공모제도인데요. 우선 대가의 문제와 관련해선 민간 대가기준을 제정해야 합니다. 건축사 일이 사적 영역인지 공적영역인지부터 시작하는 거죠. 소위 '싸게 빨리 해서' 안전의 문제가 생기고, 근본적으로 건축의 질 문제도 생기고 있잖아요.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해 안전한 건축을 제공하려면 공적 영역으로 가야 하는 거죠. 과거보다 굉장히 많은 요소가 건축에 관여하게 됐고 책임도 많고 검토할 사항도 늘었습니다. 제대로 된 건물 설계를 위한 적절한 시간과 비용이 있어야 하는데 사적 영역에 내버려 두면 불가능한 거죠. 저가수주 문제도 생기고요. 조달청이나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공건축물에 대한 대가는 현실화 돼 있는데, 민간대가는 많게는 5~6배 적습니다. 30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에요. 이 문제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더불어, 제대로된 설계를 할 규칙과 제도도 만들어야죠. 다음으로, 설계공모제는 외국처럼 건축사가 심사를 보도록 하고, 공정성과 관련해 기준을 만들어서 젊은 세대가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젊은 세대는 앞으로 K건축 '붐'을 이끌어갈 주역입니다. 미래 건축사와 건축학도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건축이 가진 근본적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 기본생활 의식주 중 하나를 담당하고, 건축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축가가 되려는 사람은 도리어 다른 공부를 해야 됩니다. 건축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직업이니, 역사와 정치, 사회, 예술 등을 섭렵하지 않고는 좋은 건축을 하기 힘들 거든요. 또, 세상을 살면서 성급하게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밤새 작품해도 결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도 있는데, 성급하면 좌절이 클 수 있어요. 지금 건축을 둘러싼 환경에 많은 도전이 있습니다. 건축을 공부하고 새롭게 사회에 나오는 후배들이 시련을 겪는 시기인데, 지혜를 모아야 됩니다. 협회도 비전을 제시하고 꿈을 줘야 합니다. 건축사 역할과 책임이 강한 사회를 만들어야죠.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프로필

△연세대 공학대학원 건축공학과 석사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서울특별시건축사회 회장 △국제건축연맹(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장 △국토교통부 중앙건축위원회 위원 △현 태건축설계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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