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아닌 '상인'이 되어가는 명품[talk talk 살롱]

백주아 2023. 4. 24.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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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한화갤러리아 상품본부 패션부문장]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 1위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총괄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기사화 되는 것을 보면 명품 산업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 것 같다. 중세시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던 명품이 산업화를 거치며 지금과 같이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명품의 대중화’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성공한 상공인들은 ‘아무개 3세’, ‘아무개 백작’ 등 왕족, 귀족처럼 타고난 신분을 증명하는 호칭이 따로 있지 않았다.이들은 귀족들이 사용하던 장신구, 트렁크, 드레스나 신발 등의 이른바 명품을 통해 자신의 신분 상승을 표현할 수 있었다. 명품의 대중화는 이때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화에 따른 수요 증가는 가내 수공업으로 운영되던 명품생산을 기업화하는 계기가 됐다. 또 태어나면서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기득권층만이 누리던 명품을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명품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됐다. 신분제를 벗어난 새로운 사회의 태동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소비였다.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아르노 회장이 1987년 루이비통을 인수하면서 시작된 ‘명품 대기업의 탄생’이다. LVMH그룹, 구찌그룹을 인수한 이탈리아의 케어링(KERING)그룹, 까르띠에의 모기업이자 시계·보석의 강자 리치몬드 그룹이 대표적인 명품 대기업이다. 상장사인 이들은 주주들로부터 지속적인 사업확장을 요구받았고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해외진출을 활성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내 명품 산업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면세점 활성화, 1995년 세계 무역 기구(WTO)가입과 같은 경제환경의 변화와 명품 대기업의 해외 진출 확대 전략이 맞물려 1996년 루이비통, 이듬해 샤넬과 같은 주요 명품 브랜드가 직진출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동일하게 발생했다. 명품 대기업의 탄생은 명품의 글로벌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일종의 골목상권 침범이라고 할 수 있는 ‘명품의 취급 품목 확대’이다. 명품은 강력한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취급 품목을 넓혔다.

뉴룩(New Look)을 통해 현대 여성복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디올’은 남성복 ‘디올옴므’에 이어 고가의 파인 주얼리까지 확대했고, 여행 관련용품으로 사업을 시작한 루이비통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이는 패션 상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구찌는 ‘구찌 오스테리아’(Gucci Osteria)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웨어를 중심으로 홈리빙 컬렉션 ‘구찌 데코’를 론칭했다.

품목 확대는 고객과의 접점을 넓혀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는 현명한 전략이다. 끝으로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좋을 만큼 명품의 패러다임 자체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바로 ‘스트리트 패션의 도입’이다.

시작은 2015년 스트리트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를 영입하고, 스트리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어글리 슈즈 ‘스피드러너’와 ‘트리플S’를 연속 히트시킨 ‘발렌시아가’이다. 자극을 받은 루이비통은 2017년 대표적인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을 통해 변화에 동참했다. 구찌도 초록색과 빨간색의 좌우 비대칭 컬러를 사용하는 짝짝이 신발을 출시하며 ‘스트리트 감성의 럭셔리 브랜드일까, 럭셔리한 감성의 스트리트 브랜드 일까’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버버리, 생로랑, 벨루티 등 다수 브랜드는 이를 위해 전통적인 로고를 포기했다. 상품에 브랜드명을 직접 레터링하는 스트리트 패션의 성공 공식을 따르기 위해 고객들에게 브랜드명이 정확하게 인식될 수 있도록 단순하고 두꺼운 폰트의 로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기업화된 명품브랜드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취급 품목의 확대, 스트리트 패션의 도입 등의 확장 전략을 선택했다. 하지만 자칫 오랫동안 그들을 명품으로 인정받게 했던 ‘장인정신’의 빈자리를 ‘상인정신’으로 채우는 결과로 이어져 고객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백주아 (juaba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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