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선포했지만… 높은 재범률에도 치료·재활엔 무관심
금세 내성 생겨 점점 자주 독하게 투약
공황장애·감각 이상 후유증 때문 또 약
2022년 유통·투약 1만2387명… 5년 새 최다
당국 파악한 중독자 721명… 재범률 37%
재활센터 입소자도 어려져 20·30대 최다
중독 전담병원 21곳 중 2곳만 제역할
대다수 예산 없어 의료진·병상 못 갖춰
“마약·알코올 등 중독 관리 총괄법 필요”
‘수시로 찾아오는 갈망’.
다르크는 전국에 네 곳 있는 민간 마약중독재활센터다. 경기 다르크엔 현재 15명 정원을 꽉 채운 인원이 재활 중이다. 이 중 12명은 합숙을 한다. 눈 뜰 때부터 잠에 들 때까지 이들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없다. 지난 20일 방문한 다르크는 겉보기엔 가정집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은 마약을 접하기 전에 누리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로를 꽉 붙들고 있었다.
이날 만난 입소자 오모(27)씨가 마약류를 처음 접한 건 2020년 초였다.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운동을 부상으로 그만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힘든 일이 겹치자 이를 다 잊고 싶은 마음에 친구로부터 대마초를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호기심 반, 우울감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반으로 시작한 대마가 합성대마와 케타민으로 다양해졌다. 오씨는 친형과 여자친구의 신고로 지난해 10월20일 구속돼 3월20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바로 이곳에 들어왔다. 단약한 지는 구속 직후로부터 딱 7개월째를 맞았다.
오씨는 “언제든 마약을 조절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점점 찾는 주기는 잦아지고 내성이 생겨 비슷한 기분을 느끼려면 더 많은 횟수를 흡입해야 했다”며 “약 기운이 떨어지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숨을 못 쉬는 공황장애 증상이나 불면증이 심해졌고 불안, 우울, 식욕 저하 같은 후유증도 악화했다”고 전했다. 그는 “형과 어머니에게 투약 사실을 들킨 뒤 화장실로 도망쳤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은 눈은 다 풀리고 입가에 음식물을 묻히고 있는 딱 ‘약쟁이’였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유통 및 투약 사범 총 검거 인원은 1만2387명으로 최근 5년 새 최대 수치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한 비대면 거래도 꾸준히 증가해 검거 인원 중 약 4분의 1(3092명)이 인터넷 사범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심사평가원이 파악한 마약 중독 인원은 2018년 429명에서 지난해 721명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김영호 을지대 교수(중독재활복지학)는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마약을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일부 국가·주는 마약을 비범죄화하기 시작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는 인터넷을 통해 마약류 유통도 더 쉬워졌다”고 분석했다.
재생산되는 마약 수요 억제는 병원에서의 해독·치료와 지방자치단체·재활센터의 유기적 연결에서 시작되지만 우리나라는 전 단계가 삐걱댄다. 공급 차단 측면에서 유통·거래에 관여하는 마약사범에 대한 철저한 수사 및 처벌과 함께 수요 재생산 차단을 위해 치료와 재활에도 국가적인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르크 같은 민간 재활 시설에 대한 지원은커녕 보건복지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전국의 마약 중독 전담 치료 병원 21곳 중 대다수도 예산과 의료진 부족으로 제대로 된 운영이 힘든 실정이다. 의료진이 있고, 병상과 치료 시설 등이 구축된 2곳 정도만이 현실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마약사범이 큰 폭으로 늘고, 이에 따른 중독자도 늘고 있지만 지난해 복지부에 책정된 예산은 4억2000만원에 불과했다. 김 교수는 “이 돈으로 전국 병원 입원비, 치료비를 다 지원한다고 하면 어느 병원이 병동을 만들고 전문 의사를 두겠느냐”고 반문했다.
조 원장은 수차례 투약한 중독자 외에도 유통·밀수범까지 모인 교도소 또한 치료 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도소에는 중독자가 많고 어차피 수감돼서 전문 치료사를 뽑아 운영하면 외부에서 운영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며 “중독될수록 치료는 어려워지고 재범은 많아지니까 모든 걸 잃고 나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 역할 못하는 NIMS… 의사들 0.3%만 투약이력 조회
배우 유아인(37·본명 엄홍식)이 최근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과 졸피뎀 등을 의료 외 목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정부는 마약류를 처방한 의료 기관과 투약 환자 정보 등이 담긴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2018년부터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감시·관리 인력이 충분치 않고, 투약 이력을 조회하는 의사가 거의 없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후 조사 전 의료 현장에서 마약류 상습 처방 환자를 걸러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1년간 환자의 마약류 투약 내역을 조회할 수 있는 ‘의료쇼핑방지정보망’이 2020년부터 운영되고 있지만 조회 의무가 없다 보니 유명무실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10만5639명의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했고, 정보망을 조회한 의사는 338명(0.32%)에 불과했다.
정부는 최근 마약류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펜타닐 패치와 식욕억제제, 프로포폴, 졸피뎀 등 오·남용 우려가 높은 마약류부터 단계적으로 처방 내역 조회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의료 현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불가능하다고 반대하고 있다.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처럼 NIMS도 의사가 처방 전에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두 시스템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건강보험 급여로 처방되는 정보를 취급하는 DUR의 경우 약을 처방할 때 자동으로 확인이 된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NIMS의 경우 의사가 따로 정보망에 들어가 확인하는 구조여서 현장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며 “DUR처럼 진료 환경에서 바로 확인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양주=박유빈 기자, 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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