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우스 외교에 공들이는 일본과 한국의 선택[이지평의 경제 돋보기]
러시아 경제 제재 조치 실효성 약화 야기 우려
우크라이나 공동 보조에
글로벌 사우스 국가 협조 유도하려는 일본,
인도와 외교에 관심
[경제 돋보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3월 인도를 방문한 데 이어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집트·가나·케냐·모잠비크 등을 잇달아 방문할 예정이다. 최근 일본 정부가 개도국 외교를 강화하는 것은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부상이라는 국제 외교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5월 아프리카 4개국을 방문해 우크라이나 정세를 논의하거나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협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사우스의 정의에는 모호함이 있지만 과거 냉전기의 제삼세계 개도국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 마찰이 격화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중국·러시아 세력과 G7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세력이 대립하는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는 양 진영과 거리를 둔 국가들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세계 경제의 변화, 원자재·식량 가격 급등에 따른 타격을 받으면서 G7을 중심으로 한 대러시아 제재에 거리를 두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로서는 세계 경제의 분단, 중국이나 러시아를 분리하려는 세계 경제 환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 정치·외교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외교에 일본이 주력하고 있는 데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G7과 협조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도 공동 보조를 취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겠다는 측면도 있다.
G7과 중국의 힘겨루기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합도 심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서로 적대하고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반미 국가인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개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전을 중개하려는 노력도 강화하고 있고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4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 회담에서 이러한 중국의 외교적인 노력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인 노력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의 실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일본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일본이 글로벌 사우스 외교에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전략에서 인도와의 외교 관계가 중시되고 있다. 사실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서의 지위를 강화하고 있고 중국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2~13일 인도가 주도해 개최된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의’라는 온라인 회의에서는 120개국 이상의 국가가 초대됐지만 중국은 제외됐다.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는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도 경제력으로 우위에 있는 중국을 견제하면서 인도가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서 보다 민주주의 세력에 우호적인 방향을 주도하기를 바라고 있다. G7과 인도의 연계를 지원, 유도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최근 미국도 인도가 대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이지 않고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하게 대량 구매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추궁하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세계 경제의 분단과 블록화 조짐, 경제 안보의 강조 등 경제 분야에 대한 지나친 정치 개입은 세계 경제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그 자체가 새로운 분쟁의 불씨가 된다. 이에 따른 기업의 각종 재고 부담, 비효율적인 생산 거점 배치 등은 결과적으로 가격 인상,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조시키고 개도국이나 선진국의 취약 분야의 금융 불안의 불씨로서도 작용하게 된다. 중국이 반도체 등 한국산 산업재의 공급 안정성을 의심하고 수입을 줄이기 위한 국산화 정책을 한층 강화함으로써 한국의 수출에 대한 타격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부상하는 글로벌 사우스가 세계 경제의 분단을 촉진하는 힘겨루기의 대상이 될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친화적이고 포섭적인 세계 경제 질서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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