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유권 이전' 전세 피해자들에게 취득세라도 감면해야"
43채 보유 지모씨 파산신청으로 민사도 면책사유
울며겨자먹기로 소유권 이전 고민.. 금리에 세금부담
[화성=이데일리 황영민 기자] “다른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곳과 달리 동탄은 이미 역전세 시장이 형성된걸 알고 들어가 놓고서는 왜 이제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도 피해를 입은 사실은 분명한데 억울할 뿐이죠.”
최근 불거진 동탄신도시 일대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한 명의 말이다. 화성 동탄과 수원·오산 등 일대에 오피스텔과 주택 등 250여 채를 보유한 박모씨 부부가 파산 신청을 사건에 이어 오피스텔 등 43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또다른 임대인 지모씨의 파산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동탄신도시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23일 기준 경찰에 접수된 동탄 일대 전세사기 피해신고는 91건이다.
지난 21일 오후 동탄신도시에 위치한 공인중개사 사무실 밀집지역. 박씨 부부와 지씨 등 임대인들의 계약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주변 다른 사무실들은 문을 열고 영업 중이지만 문제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은 현관문이 꼭 걸어잠긴채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가 꽉 내려져 있었다.
해당 사무실 앞에서 만난 30대 초반 여성 A씨는 43채의 오피스텔을 보유한채 지난 2월 법원에 파산신고를 한 지모씨의 오피스텔 임차인이다.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동탄에 집을 알아보던 A씨는 2021년 12월 보증금 1억4300만 원에 9평짜리 오피스텔을 전세 계약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보증금 500만 원을 올려 1년 계약 연장을 했으나, 지난 19일 갑자기 임대인 지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이 파산 신청을 했으니 경매를 통해서 집을 사들이든, 소유권을 이전하라는 내용이었다.
놀란 마음에 부랴부랴 등기를 확인해보니 이미 파산신고는 지난 2월 돼 있었고, 집은 압류된 상태였다. 보증금의 대다수는 전세자금대출로 충당했다. 전세사기에 대해 법무사로부터 상담도 받았으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민사소송을 걸더라도 이미 파산신고가 끝났기에 면책사유가 돼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는 답변 뿐.
A씨는 “지씨가 최근 다시 전화와서 본인이 체납된 세금을 정리해서 압류를 풀어줄테니 다음달 중에 소유권을 이전할지 말지 결정하라고 했다”며 “밀린 세금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본인은 600만 원이라고 하는데, 오피스텔을 수십채 가진 사람이 600만 원 체납 때문에 파산신청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더 싸다는 것은 다른 매물들을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동탄 다른 집들도 다 이정도 가격에 형성돼 있었다”며 “동탄은 이런 역전세 이미지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자를 피해자로도 보지 않는 인식이 있어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금 상황에서는 소유권 이전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지씨가 압류를 못풀면 체납세금까지 떠안아야 한다. 어떻게든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나라에서 소유권을 이전하는 피해자들에게 취득세라도 감면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라고 덧붙였다.
전세피해지원센터 찾아도 뾰족한 답은 없어.. 취득세 감면만 바라봐
같은날 오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위치한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센터에는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 사람과 또 작성을 기다리는 이들까지 서너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부동산 전세가와 매매가 역전 현상이 발생하면서 깡통전세 등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경기도가 피해자 상담 및 지원을 위해 마련한 이곳 전세피해지원센터에는 하루 평균 10여 명의 피해자들이 상담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
최근 화성 동탄신도시에서 또 250여 채에 달하는 오피스텔 전세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센터를 찾는 피해자들의 줄은 끊이질 않고 있다. 센터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로 한정적이다. 3월 31일 개소 이후 15일간 진행한 상담건수만 150건이다. 그나마 전화로 피해상담 사전예약을 받고 있기에 혼잡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센터 직원의 전언이다.
이날 센터 앞에서 만난 피해자 김모(20)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난해 첫 직장을 구한 사회초년생이다. 직장을 다니기 위해 지난해 말 보증금 9000만 원에 동탄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구했지만, 얼마 전 공인중개사로부터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소유권을 이전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씨는 박씨 부부가 보유한 250여 채에 달하는 오피스텔 중 한 곳에 입주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가 받은 문자에는 ‘임대인 사정으로 6월 10일까지 소유권이전등기를 접수해야 국세 체납으로 인한 보증금 순위가 보존되지 않는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유권이전등기를 진행할 사람은 연락 달라’고 적혀 있었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에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찾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김씨는 “소송을 한다고 해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시중은행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 소유권을 이전 받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은행 금리부터 취득세는 물론, 생각도 못한 부동산을 떠안게 된다니 막막하기만 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황영민 (hym86@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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