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뒷배' 중러의 협공… 尹 '가치외교' 기로에 서다
"과거 '줄타기 외교' 수명 끝나"
"비핵화·평화 위해 중러 도외시 안돼"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동맹 70년을 맞아 한미관계를 한 단계 높이고 북한의 도발위협을 억제할 기회다.
하지만 러시아에 이어 중국이 전면에 등판하면서 판이 꼬였다. 양국은 핵심 이익인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를 거론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 삼아 한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뒷배를 자임하며 지원사격에 그치던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자유와 민주를 앞세운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중러와 충돌 불가피한 尹 외교 기조
러시아는 한국을 '적대국가'로 못 박았다. 중국은 '엄정교섭'을 제기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19일 공개된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고, 중국과 대만 문제를 전 세계적 사안으로 규정하자 기다렸다는 듯 함께 달려들었다.
윤 대통령 인터뷰는 전략적 유연성을 버리고 미국과 밀착하겠다는 의도적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방한 때만 해도 여름휴가를 핑계로 만나지 않고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인도·태평양전략을 공개하며 자유·평화·인권을 강조했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표현들이다. 이후 우크라이나 전황이 악화하자 서구의 요구에 부응하는 형식으로 반러시아 전선에도 동참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3일 “정부가 대외정책 기조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같이 가겠다’는 점을 강조하며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핵심으로 내세운 만큼 중국, 러시아와는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정쩡한 줄타기 대신 확실한 국익?
미국과 서구가 한편이 돼 중러와 맞서는 진영 대결에 한국이 뛰어든 셈이다. 미중 사이에서 운용의 묘를 발휘하던 '줄타기 외교'는 빛이 바랬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갈등이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흐르면서 균형을 잡는 외교 기조 자체가 힘들어졌다”며 “미국 편에 서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독불장군인 양 '중국 때리기'에 앞장섰다. 반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러를 상대로 동맹국에 높은 수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대사를 지낸 전직 고위 외교관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중 경쟁이 격화하고 중러 밀착이 심화해 미국과 군사동맹인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며 “과학기술, 안보 등의 이익은 모두 동맹과 연대해 얻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러와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미국으로 쏠린 만큼, 몸값을 확실히 높여 국익을 극대화할 때다. 안보는 확장억제, 경제는 반도체법 등에서 미국의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실제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동맹이 복원되면서 미국은 전략자산을 이전보다 자주 한반도에 보내고 있다. 김현욱 교수는 “이번 인터뷰는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하나의 교섭카드로 던진 것일 수 있다”며 “대미관계에서 어떻게 윈윈하고 우리가 무엇을 더 챙기느냐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北 리스크는 여전
반면 우리가 감수해야 할 위험은 훨씬 커졌다. 북한은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쏜 데 이어 최초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한 상태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도 중러 양국이 어깃장을 놓으면서 유엔 안보리가 무력화된 지 오래다. 여기에 중국, 러시아가 등을 돌리면서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가 부실해졌다. 한반도 대결구도는 반전의 계기를 찾기 어렵게 됐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남북 분단과 4강에 둘러싸인 동북아 지형에서 한반도 비핵화, 평화, 번영, 통일을 추구하려면 중국과 러시아를 도외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동맹외교에만 몰입해선 안 되고 실무선에서 중국, 러시아와 소통하며 관계를 관리하는 세련된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달리 박원곤 교수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완벽하게 북한 편을 드는 상황에서 추가로 역할을 기대할 만한 게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美로 방향 틀었지만…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의 가세로 한반도 상황은 한층 복잡해졌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윤석열 정부의 최대 외교적 도전은 한중관계에서 올 것”이라며 “러시아까지 포함해 냉전적인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순조롭게 풀어갈지가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에 '플랜 B'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미국에 밀착함과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통합된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금은 없다”면서 “그러다가 중러외교는 동맹외교의 뒤치다꺼리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국, 서구와의 협력을 다지면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가 멀어져 발생할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외교 기조가 오락가락하다가는 화를 자초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원곤 교수는 “정부가 방향을 정했으면 일관되게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간에 흔들리면 양측으로부터 두 번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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