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정기예금에 넣은 퇴직연금 30조, 빠져나가나
오는 7월부터 근로자가 운용을 책임지는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연금 계좌에 들어 있는 저축은행 고금리 정기예금 등이 만기가 돌아왔을 때 연장하겠다고 분명하게 얘기해야 재예치된다. 아무 얘기를 하지 않으면 미리 지정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으로 돈이 옮겨진다. 작년 도입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1년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는 7월 본격 시행되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율적으로 가입한 IRP(개인형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는 DB(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처럼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본격 시행되면서 저축은행 업계에선 긴장감이 돌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전문가 심사 등을 통해 은행·증권·보험사 등이 만든 디폴트옵션 상품을 승인해주고 있는데 여기에 은행 정기예금은 들어갔는데 저축은행 예금은 제외됐기 때문이다. 은행·증권·보험사는 2~3개의 금융 상품을 투자 위험도에 따라 묶어서 디폴트옵션 상품을 만들고 있다. 저축은행 정기예금은 퇴직연금에서 자동 재예치도 안 되게 바뀌는 데다 디폴트옵션에도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저축은행 계좌에 들어있던 퇴직연금이 7월 이후 뭉텅이로 빠져나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디폴트옵션에 긴장한 저축은행
그간 저축은행 업계는 고금리를 무기로 퇴직연금 자금을 빨아들였다. 23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퇴직연금을 취급하는 저축은행 32사의 계좌에 29조9891억원의 퇴직연금 자금이 들어와 있다. 이들의 전체 예금 잔액 107조5091억원의 28%에 달한다. 저축은행에 들어온 퇴직연금은 2018년 말 1조2558억원에 그쳤지만 지난 4년여간 24배쯤 급증했다. 감독 당국이 2018년 저축은행 예금도 DC형이나 IRP에 넣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2021년 말 현재 DC형 가입자는 352만명, IRP 가입자는 277만명에 달한다.
저축은행들은 그런 만큼 자금 조달에서 퇴직연금 의존도가 높아졌다. 오는 7월부터 퇴직연금에서 들어오는 유입액이 줄어들 경우, 자금 운용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에 적립된 퇴직연금 중 디폴트옵션이 적용되는 DC·IRP형 비중은 현재 7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저축은행들이 대부분 한 저축은행당 받을 수 있는 예금의 총한도를 정해 놓고 있기 때문에 디폴트옵션에서 제외했다고 말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별도로 얘기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돈이 유입될 수 있어야 한다. 시중은행은 예금을 조건 없이 무한정 받을 수 있는 반면, 저축은행은 규모가 작아 예금을 무한정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축은행들은 갑자기 너무 많은 돈이 들어오면 대출을 운용할 곳을 찾을 수 없어서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예금의 총한도를 정해 놓고 있다고 한다.
◇”저축은행 예금, 매력 높아”
퇴직연금 자금이 저축은행에서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때에만 작동한다. 시중은행 예금 금리가 연 2~3%대로 떨어진 가운데 저축은행 예금은 여전히 평균 연 4%대를 유지하고 있어 고금리 매력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또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5000만원까지는 예금자 보호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이 많은 근로자라면 디폴트옵션 시행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저축은행에 예금을 재예치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의 운용 지시가 6주(첫 4주 뒤 금융회사가 통보)간 없을 때 적용된다. 디폴트옵션이 적용된 이후에도 근로자가 지시하면 언제든지 운용 대상을 교체할 수 있고, 저축은행 예금으로도 바꿀 수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수익 대비 안정성이 높은 저축은행 예금을 선호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며 “자금 이탈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축은행은 올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위험이 커지고, 금리가 1~2%포인트쯤 낮아졌지만 예금 잔액이 3.6% 줄어드는 데(111조5389억→107조5091억원) 그쳤다.
업계에서는 디폴트옵션이 저축은행의 자금 조달 경로를 다변화시켜 재무 안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퇴직연금에 편중된 저축은행의 예금 구조가 개인·기업 부문과 균형을 맞출 수 있게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예금 채널을 다변화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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