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양대 정당의 기묘한 악의 균형

기자 2023. 4.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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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금권이 선거에 작용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표 행위가 버젓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투명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역설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의가 숨 쉬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약속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부르짖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비선과 부패로 몰락했고, 윤 대통령은 독선과 아마추어리즘으로 정치를 블랙코미디로 만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의 ‘5년간 이룬 성취가 무너져 허망하다’는 개탄은 돈봉투 사건으로 인해 민주당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심지어 돈봉투 사건은 촛불집회를 통해 집권한 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21년 5월에 일어났다. 당시 당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후보가 여러 의원에게 불법자금을 건넴으로써 정치자금법 및 정당법 위반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아직 수사 중이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없는 사건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격렬한 운동을 할 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매우 괴로운 순간이 찾아오고 이 순간을 지나면 새로운 기운이 생겨나는데, 이 시기를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 한다. 세컨드 윈드를 정치에 적용하면 권력에 취해 폭주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세컨드 윈드가 운동에서는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주지만 정치에서 민주적 통제가 없다면 권력에 취한 부패로 연결된다. 민주당의 경우에도 부패의 세컨드 윈드는 오랜 악습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촛불집회를 통해 집권한 정당에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민주당은 촛불집회 정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권력 장악을 위해 촛불집회를 이용한 셈이 된다.

사건이 드러난 후 당내 대응도 실망스럽다. “상당히 무감각해져 있다. 윤리 기준에 대한 감각이 엄청 퇴화돼 있다”는 김종민 의원의 말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당혹감이 커지면서 송영길 전 대표의 출당 요구까지 나오고 있지만, 이재명 대표는 국민에게 사과하고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을 뿐이다. 그나마 22일 밤 파리 현지의 기자회견에서 송 전 대표는 즉시 탈당하고 귀국해 검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무책임한 시간 끌기로 인해 당내 혼란이 심각해진 뒤에 나왔을 뿐 아니라, 돈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며 부정했다.

방탄용 당헌 개정과 체포동의안 부결 등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대응 과정에서 이미 상식을 저버린 민주당에 엄정한 대응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이심송심’이란 말이 회자되었듯이 이 대표와 송 전 대표는 정치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21년 전당대회에서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는 송영길 후보를 지원했고, 송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 대표를 지원했다.

이상민 의원이 경고한 것처럼 이 사태는 “당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에 해당한다. 적어도 그런 인식을 갖고 엄정히 대응해야 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불의를 당한 사람보다 불의를 저지르고 처벌받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비참하다.’ 자신의 비참함을 모른다면 불행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어떠한 성찰이나 죄책감도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은 재범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해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변명이나 ‘차비나 밥값 수준’이라는 강변이 대표적 예다.

불가에서는 무지를 가장 근원적인 죄로 여긴다. 법륜 스님은 깨달음을 방해하는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癡)를 한마디로 말하면 어리석음인 치(癡)라고 한다. 삶과 죽음에서 나타나는 열두 가지 인과관계의 근본 원인도 무지다. 잘못을 미리 깨닫지 못하는 것도 무지지만, 저지르고 나서도 깨달아 속죄하지 않는 것은 대책 없는 무지다. 이재명 대표도 사태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사태를 적극적으로 수습해야 할 당사자이고 책임자다.

총선을 앞둔 정국이 혼란스럽다. 강제동원을 대신 배상하고, 도청한 국가를 대신 변명해주는 등 국민 앞에서 다른 나라를 대변하는 정부를 살려주는 것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대 정당이 암묵적으로 이루어나가는 기묘한 악의 균형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표현은 변화무쌍한 속성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생물이기 때문에 부패하기도 쉽다. 국민의 관심이 약해지는 순간, 방치된 정치는 반드시 부패한다. 오랜 양대 정당 구도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국민밖에 없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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