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희망퇴직, 당겨진 미래
지구가 가열되는 것과 함께 고용이 녹아내리고 있다. 기후위기와 삶의 위험이 마치 경쟁하듯이 서로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탈탄소사회를 위한 산업전환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희망퇴직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기후위기, 산업전환과 관련된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의 의뢰로 수행된 연구들에는 탈탄소사회 이행을 위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산업전환을 지원해야 한다는 결론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 연구 중 ‘정의로운 전환’ ‘공정한 산업전환’을 위해 정부가 기업 규제와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발견하기 힘들다. 나아가 기업이 산업전환을 빌미로 인력 감축이나 외주화를 통한 이윤추구를 추동하지 않도록 노동조합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는 글은 더더욱 찾기 어렵다.
국내 자동차 부품사 빅4 중 하나로 꼽히는 HL만도에서 최근 벌어진 희망퇴직을 둘러싼 갈등은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전환이 기존의 이윤추구 극대화를 위한 구조조정과 얼마나 다른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올해 3월 회사는 원주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계획을 밝혔다. 만도는 2022년 2000억원의 영업이익과 1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달성한 초국적기업이다.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에는 경영상의 이유로 일방적으로 정원을 축소해서는 안 되며 인력 감축에 대해서는 반드시 노사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항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기업의 해고회피 노력 대신 2020년에는 주물공장을 외주화해 인력을 남아돌게 만든 뒤, ‘산업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유휴인력에 대한 희망퇴직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으로 만도 노동자들은 곧 사라지는 산업인력이 되어 버렸다.
만도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도 노사 간의 고용보장 협약이 무시되고, 희망퇴직이 일방적으로 관철되면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산업전환은 경영위기로 등치되고, 경영위기에 따른 인력 감축이 정당화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사는 길이라며 산업전환에 따른 규제완화와 국가지원의 혜택을 누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살 수 있다며 희망퇴직 정도는 이제 경영권의 수중으로 넘기라고 압박한다. 만도처럼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핵심 기술을 외주화하고 알짜 산업을 별도 법인화하면서 이루어지는 산업전환은 ‘고용 털어내기’에 불과할 뿐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고용불안과 삶의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규제 방향이다. 국가 주도로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을 추진한다면 기업은 산업전환의 주체이자 규제의 대상이다. 육성과 지원이 있는 만큼 정부의 규제와 기업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동시에 노동조합의 책임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은 산업전환기 공격적으로 이뤄지는 이윤추구형 구조조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만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망퇴직을 둘러싼 갈등은 1998년 이후 지속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흐름 위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도착한 기후위기의 또 다른 얼굴이다. 또한 정부 규제가 기업의 고삐를 제대로 잡지 못해 발생한 증폭된 위기이기도 하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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