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두 번째 소설집이 나왔습니다. 갓 나온 새 책입니다. 첫 번째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를 내고 약 4년 만입니다. 소녀와 춤추는 남자의 이미지가 그림자처럼 포개진 오렌지색 표지 위에 진초록의 견명조체로 표제가 쓰여 있습니다. ‘웰컴, 문래’.
책을 낼 때마다 출간 몸살을 앓습니다. 인쇄 전 마지막 교열을 볼 때부터 들기 시작한 불안과 걱정에 입맛을 잃고, 떨어진 기력에 결국 몸살까지 호되게 겪고 나서야 새 책이 담긴 택배 상자를 주저하며 엽니다. 책등과 책배와 책 앞뒤를 살피며 손으로 가만가만 쓸어 보는 데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주마등처럼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2015년 12월 중순의 해넘이가 시작된 늦은 오후, 작은 방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낯선 번호였고 바라던 곳의 연락이었습니다. ‘국제신문입니다’. 울지도 웃지도 않고 네, 네 대답만 담담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서관 노트북 44번, 불길한 숫자의 자리에서 쓴 소설 ‘쥐’가 당선작이었습니다. 젊은 당선자를 반가워하시며 앞으로 좋은 소설 많이 쓰라던 이순원 선생님의 덕담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첫 소설집의 추천사로 이어지며 거듭 은혜를 입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 무엇도 약속할 수 없습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첫 소설집 ‘볼리비아 우표’에 실린 작가의 말입니다. 다시는 소설 앞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이며 뜨겁고 충만하며 내밀하기까지 한 이 감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소설을 쓰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루의 문장과 일주일의 이야기를 모아 한 편 한 편 소설을 만들었고 그렇게 모인 여덟 편의 단편이 2018년 겨울에 첫 소설집으로 묶였습니다. 신춘문예 담당자였던 조봉권 기자와의 인연으로 당선된 그해부터 책 칼럼을 쓰게 되었고 부족한 필력에도 지금은 ‘감성터치’의 필진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년 배출되는 신춘문예 당선자는 문단의 사생아라는 씁쓸한 비유와 달리 운이 좋았던 저는 친정인 국제신문의 덕을 톡톡히 입었습니다. 당선 예지몽으로 작고한 대통령 꿈을 꿔서일까요. 대운이 오래 갑니다.
두 번째 소설집 ‘웰컴, 문래’에는 모두 일곱 편의 소설이 들어 있습니다. 표제인 ‘웰컴, 문래’는 서울의 문래동 예술촌에 모여든 젊은 남녀 넷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작인 ‘우리의 공갈 젖꼭지 나무’는 북유럽에 실재하는 공갈 젖꼭지 나무에 착상해 쓴 소설로 연대하며 성장하는 학원강사와 중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소설집 한 권만 내도 더 바랄 게 없다던 제가 두 번째 소설집까지 냈습니다. 제 이름의 소설집이지만 저 혼자 만든 책이 아님을 잘 압니다. 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 정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새 책은 어디로 부치면 될까요? 가난 때문에 시를 포기한 당신의 시심은 오롯이 제게 남아 소설이 되었습니다. 오늘 밤 꿈에 오셔서 “애썼다, 잘했다” 칭찬해 주세요. 작가 대니 샤피로는 저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을 출간한 작가의 삶에서 가장 외로운 날은 아마 출간 당일일 것이다. 아무 일도 없다. 세상이 멈춰서 주목할 일은 없을 테다. 우주는 무심하다’.
제가 외로운 것은 글을 쓰고 책을 냈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두려운 것은 글쓰기가 나의 병이자 약이기 때문이겠지요. 두 권의 소설집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소설을 씀에 있어 어떤 이유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쉬지 않고 마치지도 않겠다는 제 스스로의 다짐이며 끝내 쓰는 사람으로 남겠다는 의지입니다.
‘매일 밤 시르시아사나-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거꾸로 서서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잡념은 바람 같아서 나를 흔들기만 하는 걸요. 흔들리며 버티는 거죠. 저도 소설도 무쓸모한 존재가 되지 않아 다행입니다 휴’. 소설집 ‘웰컴, 문래’에 실린 작가의 말입니다.
저는 소설 쓰는 강이라입니다. 약속합니다. 계속 쓰겠습니다. 나의 단어로, 우리의 언어로, 나와 당신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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