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줌인/임현석]개연성 없는 전개, 설득력 있는 액션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2023. 4. 24. 03:03
앞서 세 편의 ‘존 윅’ 시리즈 영화에서 주인공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은 299명을 죽였다. 최신작인 ‘존 윅 4’에선? 140명이다. 이번 작 상영 시간 169분 동안 1분 20초에 한 명씩 죽여야지 나올 수 있는 숫자다.
존 윅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나? 시작은 복수 감정이었다. 77명을 죽인 1편에서 존 윅은 자신이 키우던 개를 죽인 자들을 쫓는다. 영화 속 복수 동기치곤 일반적이지 않은 편이다. 글로 쓰인 시놉시스상 복수 동기만 보면 존 윅 시리즈는 ‘람보’ 같은 먼치킨(Munchkin·극단적으로 강한 인물) 액션 장르물이 아니라 ‘못 말리는 람보’ 같은 코믹 패러디식 유머로 일관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악당조차도 개 때문에 이러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애시당초 그럴싸한 명분과 동기로 차근차근 스토리를 쌓아서 승부하는 영화는 아니었고, 한없이 멋을 낸 중년 킬러의 액션 활극만이 볼거리였다.
후속작인 2, 3편에서 매력적인 킬러 세계관을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존 윅 시리즈는 1편과 마찬가지로 개연성 없이 펼쳐지는 무법자의 대학살 복수극 범주를 벗어나진 않는다. 보기에 따라선 빈약한 스토리와 개연성 없는 전개가 흠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의 킬러 세계관이 집대성되고 마무리되는 4편에 이르러선 급작스러운 전개를 흠으로 보는 시각이 무색해진다. 시리즈가 지향하는 바가 보다 명확해져서다. 모든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무엇이 아름답고 좋은 것인지 웅변하는데, 존 윅 시리즈가 옹호하려는 것은 극단적인 수준의 액션 형식미다. 이번 작품은 더욱이나 액션 미학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감과 장르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무술 액션의 전통을 정확히 이해하고 관객에게 장르의 미학을 설파하고자 한다.
이번 영화에선 오사카와 베를린, 파리를 오가는 동안 총은 물론이고 칼과 활, 쿵후가 등장한다. 존 윅 시리즈는 영화사 속 액션 미학에 대한 존중감을 내비쳐 왔는데, 4편에 이르러선 동서양의 주요 액션 장르를 녹여내려는 시도까지 성큼 나아간다. 대표적으로 일본 사무라이 갑주가 놓인 호텔 내 전시장에서 존 윅이 쌍절곤을 들고 총 든 상대들을 쓰러뜨리는 액션 장면이 그렇다. 클래식 액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액션 미학에 대한 높은 이해 수준은 시각장애인 킬러 캐릭터 케인(전쯔단)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시각장애인 무술 고수는 아시아권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다. 케인의 무술은 일본 사무라이 영화 ‘자토이치’나 홍콩 무협 영화 ‘동사서독’ 속 맹무살수를 떠올리게끔 한다. 아시아권 영화 속 무술과 감정, 캐릭터성을 이해하고 영화 속에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존 윅 4는 케인을 할리우드 영화 속 전형적인 유색인종 악인 캐릭터로 소모하지 않는다.
케인은 온갖 무술에 능통한 달인으로서 존 윅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과 인격적 합리성을 갖춘 인물로 묘사된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이지만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이 지점에서 전쯔단이라는 액션 스타에 대한 묵직한 존중까지도 느껴진다.
존 윅 시리즈는 세상 온갖 액션 영화에 대한 헌사를 통해 미학적 완성을 지향하는 장인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액션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려고 영상을 현란하게 분절하는 할리우드식 눈속임은 없다시피 하다. 롱테이크로 긴 호흡으로 액션을 담아낸다. 주인공과 악당이 합을 겨루는 장면들은 마치 무기와 무술을 활용한 무용을 보는 것만 같다. 그걸 보다 보면 무술이 서사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별개의 예술처럼 다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존 윅 4는 액션 장르에 대한 존중감을 관객에게도 발신한다. 그 장르적 자신감을 마주하다 보면 영화를 보는 동안 개연성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장인이 한 땀 한 땀 다듬은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 우물을 판 장인의 눈빛은 구구한 설명 없이도 설득력을 지니는 법이다.
복수에 매진하던 존 윅이 이번 작에선 자유를 갈망하며 국제적 연합조직 최고회의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시리즈는 막바지를 향해 간다. 복수에서 자유로 테마를 절묘하게 틀어간 덕분에 스토리도 보다 깊이를 얻었다. 한 가지를 대하는 태도가 곧 만 가지를 대하는 태도라더니. 하나를 깊이 파다가 여러 장점에 도달한 걸작이 탄생하기도 한다.
존 윅은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나? 시작은 복수 감정이었다. 77명을 죽인 1편에서 존 윅은 자신이 키우던 개를 죽인 자들을 쫓는다. 영화 속 복수 동기치곤 일반적이지 않은 편이다. 글로 쓰인 시놉시스상 복수 동기만 보면 존 윅 시리즈는 ‘람보’ 같은 먼치킨(Munchkin·극단적으로 강한 인물) 액션 장르물이 아니라 ‘못 말리는 람보’ 같은 코믹 패러디식 유머로 일관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악당조차도 개 때문에 이러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애시당초 그럴싸한 명분과 동기로 차근차근 스토리를 쌓아서 승부하는 영화는 아니었고, 한없이 멋을 낸 중년 킬러의 액션 활극만이 볼거리였다.
후속작인 2, 3편에서 매력적인 킬러 세계관을 구축했다고 하더라도, 존 윅 시리즈는 1편과 마찬가지로 개연성 없이 펼쳐지는 무법자의 대학살 복수극 범주를 벗어나진 않는다. 보기에 따라선 빈약한 스토리와 개연성 없는 전개가 흠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의 킬러 세계관이 집대성되고 마무리되는 4편에 이르러선 급작스러운 전개를 흠으로 보는 시각이 무색해진다. 시리즈가 지향하는 바가 보다 명확해져서다. 모든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무엇이 아름답고 좋은 것인지 웅변하는데, 존 윅 시리즈가 옹호하려는 것은 극단적인 수준의 액션 형식미다. 이번 작품은 더욱이나 액션 미학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감과 장르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무술 액션의 전통을 정확히 이해하고 관객에게 장르의 미학을 설파하고자 한다.
이번 영화에선 오사카와 베를린, 파리를 오가는 동안 총은 물론이고 칼과 활, 쿵후가 등장한다. 존 윅 시리즈는 영화사 속 액션 미학에 대한 존중감을 내비쳐 왔는데, 4편에 이르러선 동서양의 주요 액션 장르를 녹여내려는 시도까지 성큼 나아간다. 대표적으로 일본 사무라이 갑주가 놓인 호텔 내 전시장에서 존 윅이 쌍절곤을 들고 총 든 상대들을 쓰러뜨리는 액션 장면이 그렇다. 클래식 액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액션 미학에 대한 높은 이해 수준은 시각장애인 킬러 캐릭터 케인(전쯔단)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시각장애인 무술 고수는 아시아권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다. 케인의 무술은 일본 사무라이 영화 ‘자토이치’나 홍콩 무협 영화 ‘동사서독’ 속 맹무살수를 떠올리게끔 한다. 아시아권 영화 속 무술과 감정, 캐릭터성을 이해하고 영화 속에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존 윅 4는 케인을 할리우드 영화 속 전형적인 유색인종 악인 캐릭터로 소모하지 않는다.
케인은 온갖 무술에 능통한 달인으로서 존 윅에게 밀리지 않는 실력과 인격적 합리성을 갖춘 인물로 묘사된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이지만 다층적으로 그려낸다. 이 지점에서 전쯔단이라는 액션 스타에 대한 묵직한 존중까지도 느껴진다.
존 윅 시리즈는 세상 온갖 액션 영화에 대한 헌사를 통해 미학적 완성을 지향하는 장인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액션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려고 영상을 현란하게 분절하는 할리우드식 눈속임은 없다시피 하다. 롱테이크로 긴 호흡으로 액션을 담아낸다. 주인공과 악당이 합을 겨루는 장면들은 마치 무기와 무술을 활용한 무용을 보는 것만 같다. 그걸 보다 보면 무술이 서사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별개의 예술처럼 다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존 윅 4는 액션 장르에 대한 존중감을 관객에게도 발신한다. 그 장르적 자신감을 마주하다 보면 영화를 보는 동안 개연성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장인이 한 땀 한 땀 다듬은 액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한 우물을 판 장인의 눈빛은 구구한 설명 없이도 설득력을 지니는 법이다.
복수에 매진하던 존 윅이 이번 작에선 자유를 갈망하며 국제적 연합조직 최고회의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시리즈는 막바지를 향해 간다. 복수에서 자유로 테마를 절묘하게 틀어간 덕분에 스토리도 보다 깊이를 얻었다. 한 가지를 대하는 태도가 곧 만 가지를 대하는 태도라더니. 하나를 깊이 파다가 여러 장점에 도달한 걸작이 탄생하기도 한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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