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만 ‘소’ 그렸나… 박수근·장욱진·박생광도 자신만의 ‘소’ 있다
슬픈 소·해학적인 소·웅크린 소…
거장의 개성 가득한 소 그림 화제


꼬리를 축 늘어뜨린 소 한 마리가 처연하게 서 있다. 큼직한 눈망울에서 당장이라도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질 것만 같다. 콘테로 쓱쓱 그린 그림 아래에 화가는 ‘수근’이라고 이름을 남겼다. 전쟁 지나고 폐허가 된 땅에서 눈에 보이는 일상 풍경을 그리던 박수근에게, 소는 동네 아낙이나 아기 업은 소녀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였을 것이다. 김영태 시인이 이 그림을 보고 ‘소’라는 시를 썼다. “죄 없는 소나 그렸지, 그런데 그 소가 지금 수근… 이라고 슬프게 말한다.”


◇울부짖는 소, 웅크린 소, 슬픈 소…
이중섭만 소를 그린 게 아니다.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에는 우리 근현대 회화 거장들이 그린 다양한 소 그림이 나왔다. 붉은 바탕을 배경으로 울부짖는 듯 입을 크게 벌린 이중섭의 ‘황소’와 지친 모습으로 스러져가는 ‘회색 소’가 함께 걸렸다. 맞은편엔 수묵으로 화면을 꽉 채운 박생광의 소 그림 두 점이 있고, 다른 방엔 박수근이 연필로 그린 소와 동화 같은 장욱진의 소가 있다. 울부짖는 소, 웅크린 소, 슬픈 소, 유머러스한 소…. 작가 특유의 개성과 붓질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우직하고 순하고 희생적이지만, 화가 나면 저돌적이고,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는 우리 민족을 닮았다. 이중섭에겐 특히 분신 같은 존재였다. 이중섭 그림에서 소는 고통과 분노, 절망이기도 하고, 격렬한 힘과 의지, 희망의 상징이기도 했다. 반면 박생광의 소는 단순해서 더 눈길을 붙든다. 단청 안료와 원색 물감으로 화려한 채색화를 그리던 박생광은 말년에 수묵만으로 소, 용, 호랑이를 더러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두 마리 황소가 눈을 부릅뜬 채 몸을 맞대고 얽혀 있는 ‘황소’와 화면 가득 웅크리고 앉아있는 소 한 마리를 그린 ‘무제’가 나왔다. ‘황소’는 세부 묘사는 과감히 생략하고 먹의 번짐과 스며듦 등 발묵 효과, 빠른 곡선만으로 소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황인 미술평론가는 “경남 진주는 남강 근방에서 예부터 소싸움을 많이 했다. 진주 출신인 박생광은 어릴 때부터 소와 친숙했을 것”이라며 “박생광과 이중섭은 워낙 친했고, 1954년 박생광의 초청으로 이중섭이 진주에 체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장욱진의 ‘소 있는 마을’은 소박한 그림이다. 하늘에는 새 두 마리가 다른 방향을 향해 날고, 나무 두 그루와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좌우 대칭 구도를 이룬다. 가운데 소는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격동의 1950~70년대, 같은 동물을 그리면서도 작가들의 시선은 이렇게 달랐다.

◇권진규에겐 말이 분신
이중섭의 분신이 소라면 권진규에겐 말이 그런 존재였다. 권진규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다양한 동물을 제작했는데, 특히 말은 강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표현하는 대상이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말 작품만 4점. 건칠 조각인 ‘서 있는 말’은 뒷다리로 지탱한 채 꼿꼿이 서 있는 역동적인 자세가 일품이다. 건칠은 삼베를 한 겹 한 겹 덧붙이면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방식. 권진규는 망치나 끌 같은 도구보다 손으로 직접 만지고 주무르며 마지막까지 개입할 수 있는 이 제작 기법을 선호했다. 방탄소년단 RM이 출품한 ‘달을 보는 기사’는 단순한 드로잉인데도 말의 탄탄한 허벅지 근육이 느껴진다. 한 20대 여성은 “제목에서 설화적인 느낌도 나고 낭만적인 데다, 옅은 오렌지색 컬러도 예뻐서 인스타 소장각”이라며 인증샷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조선일보사가 국민체육진흥공단·디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25인의 작품 159점을 선보인다.
▲서울 소마미술관 8월 27일까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학생 9000원
▲문의: (02)724-6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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