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물 만난 꽃게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열대어를 키워야겠단다. 동영상을 찾아보더니 어항과 소금을 주문했다. 산호 모래를 깔고 염도를 계산해서 바닷물을 만들었다. 이제는 니모를 사러 가야 한다. 수소문해서 해수어를 파는 수족관을 찾아갔다. 집에서 직접 해수어 어항을 만들었다고 하니 전문가인 사장님 눈에는 어쭙잖게 보였나보다. 해수어를 순환시키고 염도를 조절하려면 최소 수백만원짜리 어항과 기기를 사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들은 대실망했고 울상으로 집으로 왔다.
다음 날 시어머니가 꽃게 철이니 꽃게를 사다가 쪄 먹자고 하셨다. 시장에 가서 꽃게 세 마리를 사 왔다. 꽃게를 냄비에 넣으려는 순간, 아들이 “엄마!” 하고 부른다. 꽃게가 바다에 사는 애들 아니냐며 한 마리만 달라고 한다. 한 마리를 검은 봉지에서 꺼내 어항에 넣었다. 죽어가던 놈이 바닷물에 들어가자마자 용맹하게 집게를 양쪽으로 치켜들고 두 번 까딱하더니 살아났다. 포식자의 눈빛으로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움직이면서 모래 옆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위엄과 카리스마라니! 해수 어항에 주인이 생겼다.
갑자기 꽃게를 키우게 되었다. 뭘 먹여 키우나 걱정이 되어 ‘꽃게 밥’으로 검색하니 죄다 꽃게탕을 끓여서 밥 말아 먹는 법에 대한 포스팅밖에 없다. 꽃게 먹이가 조개 같은 작은 바다 생물이라는 걸 겨우 알아냈다. 당장 꽃게를 산 시장에 가서 조개를 샀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조개를 공격하더니 찢어서 입에 넣는 폼이 카리스마 가득하다. 조개를 잘 드시더니 다시 경계 태세로 전환한다. 생태 교육이 따로 없다. 아이들은 신이 나 꽃게에게 ‘쪄먹’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원래 쪄서 먹으려고 했는데 살아났다는 뜻이란다. 안타깝게도 쪄먹이는 2주 정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저 세상으로 갔다.
돌아보면 물 밖 쪄먹이와 물속의 쪄먹이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물 만난 고기처럼, 물속으로 들어가니 꽃게가 꽃게다웠다. 아무리 별 볼일 없어도 ‘물을 만나면’ 반짝 빛난다. 자기 물을 만나도록 지지하는 것, 그거야말로 집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직장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 아닐까. 쪄먹이가 자기 한 몸 희생해 건네준 깨우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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