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17] 봄 (Spring)
봄 (Spring)
무슨 목적으로,
4월이여 너는 다시 돌아오는가?
아름다움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크로커스의 뾰족한 끝을 지켜보는
나의 목덜미에 닿는 햇살이 뜨겁다.
흙 냄새가 좋다.
죽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사람의 뇌는 땅 속에서만
구더기에 먹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무(無),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해마다, 이 언덕 아래로,
4월이 재잘거리며, 꽃 뿌리며
백치처럼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빈센트 밀레이(1892~1950)
(최승자 옮김)
나는 햇살만으로 충분한데, 빈센트 밀레이는 욕심이 많네. 꽃 뿌리며 백치처럼 오는 4월. 우리 생애 이처럼 화창한 봄날이 다시 또 올까 싶게 아름다운 4월의 어느 날, 봄을 열었으나 봄에 잊힌 3월을 생각하다 철쭉이 재잘거리는 화단을 지나며 빈센트 밀레이(Vincent Millay)의 시를 떠올렸다. 자기 체험을 보편화시키는 뛰어난 비유, 풍부한 서정, 간결한 언어와 생생한 이미지…. 그리스의 사포 이후 최고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받는 미국의 여성 시인 빈센트 밀레이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따라다니는 남자도 많았다.
양성애자였던 그녀는 페미니스트 변호사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다, 남편이 죽은 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4월이 꽃 뿌리며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던 시인에게 사랑 없는 삶은 의미가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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